최근 서초구 잠원동 한양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외벽에 '주민생활
방해하는 골프연습장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주민 최모씨는
"정부가 학급당 인원을 35명까지 줄이라고 했지만 이곳 초등학생들은 한
교실에서 40명이 넘게 공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교 지을
땅에 골프 연습장을 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최씨가 손으로
가리킨 공터에서는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서초구 잠원동 66의 2번지 3200평은 도시계획상 학교부지로 돼 있다. 시
교육청은 이곳에 2005년 3월까지 초등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
교육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곳을 매입조차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땅 소유주였던 한국토지공사는 지난 2001년 3월, 이곳을 주택건설업체
'파스텔'(사장 이한오)에 127억7000만원을 받고 팔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학교부지에 들어선 골프연습장=파스텔은 매입 후 5억여원을 들여 작년
2월 이곳에 3층짜리 가설 건축물을 세워 병원과 편의점 등으로 임대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서초구청에 77타석 규모 지상 3층짜리 실외 골프연습장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신축될 골프연습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게 된 경원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때문에 서초구청은 허가를
반려했지만, 행정소송 끝에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0월 파스텔의 손을
들어주었다. 파스텔은 지난달 기초공사에 들어갔고 오는 5월 골프
연습장은 완공될 예정이다.
◆쌓이는 주민들의 불만=이 땅은 강남지역 토지구획정리가 있었던 지난
83년부터 이미 학교용지로 지정돼 있었다. 근(近) 20년 동안 학교가
들어오길 기다린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러나 골프 연습장이었다.
현행법상 학교부지일지라도 가건물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가건물로 된
골프 연습장은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지난 83년에 이 땅을 사들인 한국토지공사가 땅을 판
것부터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한국토지공사측은 "매입 이후 줄곧 서울시나 서울시교육청과 매입과
관련해 협의해 왔다"며 "언제 팔릴지도 모른 채 일부 지역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땅을 썩힐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건축허가를 내준 서초구청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서초구청은 "행정소송에서 패한 뒤에도 계속 허가를 미루었지만 작년
12월 20일부터는 허가를 내 줄 때까지 하루에 100만원씩 파스텔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행정법원의 결정이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초구청이 의지가
있었다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해서 1년 이상 허가를 미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초구청은 "판결이 뒤집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소를 한다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라고 반박했다.
주민들은 지난 20년 넘게 땅을 사지 않은 교육청에도 불만이 많다. 현재
반포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데 만약 그때까지 학교가
들어오지 않으면 학급당 인원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학부모 정모씨는 "언제까지 초등학교 아이들이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야 되느냐"며 "2005년 개교를 위해 올해쯤에는 교육청에서 이
땅을 사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이 계획만 있고 의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 교육청은 "예산이 부족해 개교는커녕, 땅을 사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2006년에는 학교가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장담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주민들은 "실외골프연습장으로 인한
소음과 일조권, 교통 불편 등의 피해를 주민뿐 아니라 경원중학교
학생들도 감수해야 할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주민생활 외면한 도시계획=경원중학교 조정자 교장은 "도시계획은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있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교육 환경마저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김근재(경원중 2)군은 "3층이나
되는 골프연습장이 들어오면 시야가 가려지고 볕도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골프연습장의 높이는 45m로 학교 건물보다
높다. 김지호(경원중 2년)군은 "어른들은 옆에서 골프 치는데 공부할
맛이 나겠느냐"고 말했다.
반원초등학교 정진홍 교감은 "현재 학급당 46명이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며 "우리 학교는 10년 전보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 박경자씨는 "주민 생활 환경도 보장하지 못하는 도시계획은
허울뿐"이라며 "지금이라도 관계기관들이 자기 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주민 편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