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 7일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준 직후
국가정보원이 김경림(金璟林) 당시 외환은행장(현 외환은행 이사회장)을
모처로 불러 대북 송금자금의 환전과 송금에 협력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의 한 소식통은 6일 "지난 2000년 6월 8일 혹은 9일 국정원
관계자가 김 행장을 모처로 불러 2235억원의 환전과 대북 송금을 협조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김 행장은 "금융실명제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국정원에 환전과 송금 과정에서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국정원측은 김 행장의 이같은 조건을 받아들여 국정원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6명의 실명 이름을 빌려 2235억원 어치의 수표 26장에
배서(背書)해 주는 등 이번 사건을 시종 주도했다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이같은 증언은 수표에 배서된 6명의 이름이 '신원
불상자(不詳者·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라는 감사원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으로, 사실로 판명될 경우 새로운 파문이 예상된다. 다만
국정원이 6명의 이름으로 배서하면서 일부 가공의 인물의 이름을 댔을
가능성도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감사원 정승택(鄭昇鐸) 2국1과장은 6일 한나라당 특위에 대한 설명에서
"외환은행이 '불상(不詳)의 이름으로 배서된 수표를 받아준 것은
실명(實名)확인을 안한 것으로 법(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날 "(2235억원 송금 당시) 적법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쳤고 송금 사유를 명시한 서류도 제출받았다"면서
"금융실명법 위반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감사원 발표를
반박했다. 한편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의 대출금을
받아오던 날 국정원 직원 2명이 현대상선 사장실로 찾아와 직접 수표들을
가져갔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본지는 이에 대한 김경림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연락을 시도했으나 김 회장은 회답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