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는 나를 샘나게 한다. 엄청난 제작비나 첨단 특수효과,
세계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타들이 부럽다는 게 아니다. 영화를
어루만지는 그들의 따스한 손길이 부럽다.
최근 다시 본 영화 'E.T' DVD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DVD에는 이
영화의 개봉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이벤트가 담겨 있었다.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영화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행사였다. 상영이 끝나자 벌써 청년으로 자란
'E.T'의 주인공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관객들은 특히 82년 개봉 당시
패기 넘치는 영화청년에서 초로(初老)의 나이로 접어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부러웠고 또 착잡했다. 영화 한 편을 문화적
유산으로 가꾸고 섬기는 미국인들의 태도에는 그냥 요란한 이벤트라고
깎아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의문이 밀려왔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영화들 가운데 20~30년
후에도 관객들의 가슴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가 몇편이나 될까. 한국
영화계는 지난 몇년간 올린 기록적 관객점유율에 버금가는 질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혹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식의 뻔뻔한 영화나
'평단의 인정만 받으면 관객과의 소통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자기만족적 영화로 갈라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꿈을 꾼다. 우리도 언젠가는 'E.T' 같은 영화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은 만드는 사람의 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관객의
성숙한 영화문화, 그것이 보태지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이시명·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