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펐던 기억이요? 뭐… 별로 없어요. 친구들과 좀더 어울리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죠.”

1급 지체 장애인인 인천 대건고교 3학년 남윤광(南潤光·19)군은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에 수줍음이 섞인 웃음을 환하게 지어보였다.

몸을 전혀 못 쓰는데다 허리가 자꾸 휘어 휠체어마저도 불편한 처지에서 수능점수 331점으로 올해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에 합격한 그는 앞으로 금융 분야에서 인정받는 경제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남군은 태어난 지 한달여 만에 척수정각장애라는 병에 걸려 갑자기 몸에 열이 심하게 나면서 온몸을 쓸 수 없게 됐다.

그 다음부터는 모두가 어머니 최재례(崔載禮·44)씨의 몫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오늘까지 최씨는 아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기고 옷을 입히는 일만으로도 진땀을 빼야했지만 업거나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준 뒤 잠시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는 두어 시간만에 다시 학교에 가서 아들의 화장실 가는 일 등을 도왔다.

점심시간이면 다시 도시락을 싸서 가져다 주고 수업이 끝나면 데리고 오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했다.

“학부모가 자꾸 학교에 들락거리려니 선생님들 눈치가 보여 힘들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이해해 주셨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 한결 수월했죠.”

다행히도 아들은 무척 밝았다.

방안에서 혼자 컴퓨터 게임을 하기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이나 영화관에 다니길 더 좋아했고, 친구들 생일만 되면 먼저 챙기고 나서고, 시사적인 문제로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과외나 학원은 전혀 관련이 없고, 학교에서도 정규 수업 밖에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좋아해 늘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면서도 자기 몫은 어김없이 해냈다.

수업시간에도 전혀 의기소침하는 일이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처져 있지 않고 스스로 뭘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 좋았어요. 아직까지 ‘엄마 난 왜 이래’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굳센 모습을 보인 모자(母子)였지만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특히 3년여전 어떤 방법으로도 고치지 못한 아들의 병을 기공 치료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가 사기를 당한 일은 두 사람에게 지금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

“나의 처지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어요. 힘들 때마다 ‘이겨내자, 이겨내자’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켰죠.”

남군은 어머니와 주변에서 자신을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사는 것 뿐임을 알기에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세상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글·사진=崔在鎔기자jychoi@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