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합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수위 정치개혁연구실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낙선운동
합법화를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법 개정이 필수적인 만큼 국회정개특위에
선거관계법 개정안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즉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법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2000년 4월 13일 16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부패정치인 척결 및 시민에 의한 후보 검증 명분으로
소위 '부적합한 후보의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그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선거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선거운동으로 상당수의 후보들이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선거 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이를 불법선거 운동으로 규정함으로써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개입이 바람직하지 못했음을 판결했다. 이후 모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대다수의 국민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개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수위가 불법선거운동으로 결론이 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합법화하려는
데 대해 많은 시민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현재의 여소야대 및 지역분할
구도를 시민단체를 이용해 타파해 보려는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인선을 보면 차기 정부가
시민단체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이러한 의심은 지울 수 없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합법화할 경우 지난번 낙선운동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지난번 낙선운동에서는 정치권에 대해
시민단체가 제3자의 위치에서 감시, 낙선운동을 했지만 이번에는 인수위에
상당수의 시민운동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개혁 세력으로
대치되려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합법화는 정치적·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낙선운동의 허용은 시민단체에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레고리 핸드슨이 '소용돌이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고
명명한 한국정치구조에 시민단체들이 빨려 들어가 도덕성과 정당성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질 위험이 크다. 시민단체의 폐쇄적인 자기
무오류성과 도덕적 독단성이 낙선운동 과정에서 큰 병폐를 낳을 수도
있다.
시민운동의 본령은 부당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환경문제
등 정부가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인 생활주변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시민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단체가 정치 중립과 순수성을 지켜야한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이러한 시민운동의 본래 목표를 훼손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순수한 시민운동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포퓰리즘,
홍위병 논쟁이 끊임없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참여는
시민사회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마저 있다.
후보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의 투표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스스로 후보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다.
시민단체에 의한 낙선운동이 허용되면 각 정당과 후보는 너도나도 단체를
만들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전개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선거판은
혼란만 가중되고,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나 당의 '홍위병'으로 전락될
뿐이다. 특정후보에 대한 반대운동은 노무현 당선자와 민주당이 반대해 온
네거티브 전략의 전형이 될 수도 있다. 새시대의 선거문화는 네거티브
전략이 아니라 정책대결이 되어야 한다.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운동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만 조장시킬 뿐이다. 노무현 차기 정부가 김대중정권의
포퓰리즘 차원을 넘어'운동정권(movementregime)'으로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金錫俊/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