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조선일보사
주최) 준결승을 앞둔 '언더 독(under dog·열세 예상 경쟁자)'들이
허리띠를 잔뜩 조여매고 있다. 거함 이창호 九단과 맞대결할 원성진(18)
四단, 그리고 국제적 스타로 성장한 이세돌 三단과 준결을 치를
조한승(21) 五단이 그들. 준결승은 11일 서귀포 롯데호텔서 단판 승부로
치러진다.
◆‘탑 독(top dog)’ 이창호-이세돌
대다수 전문가들은 올해 결승이 이창호(28) 대 이세돌(20) 간의
5번승부로 좁혀질 공산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최근 활약도가
원성진 및 조한승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이 앞서있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지난달 29일 제1회 도요다·덴소 배까지 획득, 국제 대회서만
14회를 제패한 '황제'이고, 이세돌은 지난 해 제15회 후지쓰배를 통해
세계 챔프에 오른 해머 펀처다. 이런 예상이 적중한다면 두 스타는 2년
전 제5회 LG배에 이어 또 한번 명승부를 펼치게 된다(당시는 이창호가
3대2로 역전 우승). 과연 그들은 원성진, 조한승 등의 태클을 피해 결승
무대에 무혈 입성할 수 있을까.
◆ 원성진, 포기는 이르다
"성진 형의 요즘 기세는 무섭다. 거의 지지않는 편이다. 상대가 워낙
막강한 이국수님이어서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부담없이 맞부딛쳐 가면
승산도 충분하다." 최근 천원위를 따내 당당히 타이틀 홀더 대열에
들어선 17세 소년 송태곤 三단의 전망이다. 아닌게 아니라 원성진은
올해가 시작되자 마자 파죽의 6연승 가도를 달리는 등 파랗게 날이 섰다.
침착하고 착실한 기풍, 끝내기를 '전공 과목'으로 한다는 점 등에서
이창호와는 동류항으로 꼽힌다. 그래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원성진에게
"초반부터 난타전으로 이끌 것"을 주문하고 있다. 둘 간의 공식 대국은
이번이 처음. 그러나 1년 여 전에 두어진 한 차례 초속기 연습 바둑에선
원성진이 이겼었다. LG배에서 절반(3회)의 우승을 기록한 이창호에게
역대 LG배 최연소 4강의 주역 원성진은 어떤 '돌팔매'를 준비하고
있을까.
◆ 이세돌의 영원한 천적 조한승
조한승과 이세돌은 만으로 3개월 밖에 차이나지 않아 사실 상의
동갑나기다. 또한 함께 프로에 뛰어든 입단 동기이기도 하다. 그 간의
실적에선 국내 6회, 국제 1회 우승의 이세돌이 신인왕 등극 한 차례에
그친 조한승보다 분명히 앞서있다. 맞대결 전적 또한 7승 3패로 이세돌의
우세. 하지만 조한승은 2000년 이세돌의 연승 행진을 32에서 마감시키는
등, 중요한 고비에서 번번이 딴죽을 걸어왔다. 이세돌에게도 조한승은
거북한 상대란 얘기다.
조훈현 九단은 "최근 흐름으로만 본다면 이세돌에 걸겠지만, 빠른
수읽기와 잔수 등 종합 기량 면에서 거의 대등하다"며 백중세를 점치고
있다. 난타전으로 가면 이세돌이, 미세한 집 바둑이 될 경우엔 조한승
쪽이 유리하리란 게 그의 예상. 서로가 상대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 피차
잇점인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 숨어있는 여러 변수들
원성진은 무섭게 연승가도를 질주하다가도 한 번 '돌뿌리'에 걸리면
슬럼프에 빠져버리는 성격. '대사(大事)'를 앞둔 그로선 마인드
컨트롤이 매우 중요하다. 조한승은 점잖은 기풍으로 통한다. 준결 고비를
넘으려면 이세돌 만큼의 '불꽃 투혼'이 필수다. 이들 '언더 독'
들에겐 결승 진출 여부가 진학 또는 군 입대 특례 문제도 걸려있어 더욱
필사적이다.
물론 '탑 독'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이창호는 1, 3, 5회 LG배 우승자.
이번 7회 역시 홀수 회 대회임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지 모른다. 이세돌 역시 2년만에 이창호와의 리턴 매치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간 페이스를 놓칠 수 있다. 그는 평소 공공연히 "나의 적수는
오직 (이)창호 형 뿐"이라 말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