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가 무너진 건 시공사가 설계와 다르게 용접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당시 8mm 용접봉을 쓰는 현실을 무시한 채 24mm 용접봉을
쓰라고 설계한 게 문제다."
"용접 부위 3곳이 부러졌는 데 어떻게 순식간에 다리 트러스가 떨어질
수 있나? 다른 부분이 버티도록 설계해야 했던 것 아닌가?"
"한강 다리로는 최초로 미관을 고려한 신공법을 도입했다. 핀으로
연결해서 폭파시키면 붕괴했던 모습대로 내려 앉게 돼 있다."
성수대교가 내려 앉은 지 8년이 지난 요즘, 성수대교의 붕괴를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한 연극 한 편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있어 화제다.
한양대 토목환경공학과 3학년 학생 25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이태식(李泰植) 한양대 교수의 지도 아래 지난해 2학기 성수대교의 붕괴
원인에 대해 연구한 뒤 '성수대교 붕괴 상황극'을 대본으로 만들어
올해 안에 공연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1994년 붕괴 당시 원인 규명 과정에선 시공사의 '엉터리 용접' 등 부실
시공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초점을 받았지만 학생들은 '현실성 없는
설계', '염화칼슘 과다 사용', '정보 교환 부재(不在)' 등에도
무게를 실었다.
수업시간 중 학생들은 시공자(동아건설), 발주자(서울시),
설계자(대한컨설턴트), 유지 관리자(동부건설사업소)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자신이 맡은 기관의 입장을 옹호했다. '유지 관리자'를 대변했던
이진규(李振圭·25)씨는 "철재를 쉽게 부식시키는 염화캄슘을
강교(鋼橋)에 왜 뿌렸느냐고 공격당할 땐 섬뜩했다"며 "성수대교가
완공됐던 79년에는 눈 치우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유지 보수란 개념도
없었다고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설계자' 역할을 했던 신규철(申奎澈·25)씨는 "성수대교는 핀으로
연결해 흔들리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게 특징인데, 이를 알지 못했던
동부건설사업소가 중간 보수할 때 흔들림을 막는다며 고정시켜
버렸다"며 "관계 기관 사이에 의견 교환이 제대로 안된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조교 이동욱(李東昱·31)씨는 "학생들이 처음엔 자기가 맡은 기관만
옹호하다가 차츰 스스로 무엇을 잘못하게 됐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생생한 육성을 듣기 위해 당시 감독관, 현장소장 등을 만나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정희윤(鄭熙潤·25)씨는 "즐거운 얘기가
아니라며 어디에서도 연락처를 주지 않아 공사에 직접 관여했던 사람은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대신 준비기간 한 달 동안
인터넷·신문 등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각종 보고서를
얻었다.
이들이 기억하는 1994년 10월 21일의 성수대교 모습은 TV 뉴스의 화면이
유일하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신규철씨는 "평소 오전 7시에 학교
보충수업이 시작됐지만 수업을 맡은 수학 선생님이 다리가 떨어졌다며
1시간 이상 늦었다"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작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잊고 지냈던 성수대교 붕괴를 대학생이 돼서 되새겨본 이들에게 남은 건
'엔지니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이규득(李圭得·28)씨는 "기술자의 잘못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사회에 나가선 설계부터 자재 쓰는
것까지 남을 우선 생각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사회자' 역할을 했던
서동목(徐東穆·27)씨는 "성수대교 붕괴에 대해서 누구도 자신의 잘못이
없다며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인상이었다"며 "당시는 기술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자기 주장을 펴기보다는
남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을 지도한 이태식 교수는 "대형 사고가 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게 엔지니어의 역할을 되새겨 보는
의미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