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골이다.
2002~2003시즌 벨기에 주필러리그는 그야말로 설기현을 위한 무대다. 월드컵을 앞두고 벨기에의 최고 명문 RSC 안더레흐트로 이적했으나 거듭되는 부상에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2001~2002시즌을 허송세월했던 설기현으로선 정말 꿈만 같은 현실이다.
어려웠던 지난 시즌에는 아내 윤 미씨가 임신중이었던 터라 마음도 불안했다. 그러나 월드컵 4강신화와 함께 떡두꺼비같은 아들 인웅이가 태어나고, '복동이'가 굴러와서인지 그 다음부터는 무엇이든 잘 풀렸다.
이제 올시즌만 지나가면 빅리그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을 것이다. 벌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2개팀이 손짓을 했왔다.
지난 시즌까지 긴가민가하던 안더레흐트도 올시즌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떻게든 그를 잡아두려고 홈구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근사한 2층집을 새로 마련해 주는 등 마음잡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좋다. 설기현의 '벨지언 드림'은 속부터 탄탄하게 익어가고 있다.
◆어려웠던 2년이 보약이었다
지난 2000년 벨기에에 처음 진출할 때는 잔뜩 겁이 났었다. 벨기에리그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던 터라 "그런 데는 왜 가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설기현 자신도 '이곳에 묻혀서 영원히 뜻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와서 보니 모든 것이 보약이었다. 당시 자신의 실력에 벨기에리그가 가장 적당한 수준이었으며, 이곳에서 뛰며 많은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처음 벨기에에 왔을 때 몸담았던 안트워프에서의 10개월 중 6개월은 구단에서 차를 마련해 주지 않아 훈련장에 가기 위해선 버스와 전차를 갈아타며 1시간 동안 시내를 빙빙 돌아야 할 정도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모두 보약처럼 느껴진다.
◆인웅이는 '복동이'
지금 돌아보면 2001~2002시즌은 왜 그렇게 안풀렸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다. 부상이 겹치다보니 앙투아니 당시 감독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가끔 그라운드에 나서면 마음만 급했지 내가 어디로 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올시즌은 자신감이 넘친다. 월드컵이 끝난 후 돌아와서 경기장에 나서보니 자신도 모르
게 훌쩍 커져 있었고, 골도 들어갔다.
모든 게 지난해 7월말에 태어난 인웅이가 가져다 준 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인웅이와 노는 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인웅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랑을 독차지했던 아내도 질투는 하지만 이해는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빅리그행
벨기에 생활 3년만에 많은 것을 얻었다. 아내와 아들 인웅이가 있고, 벨기에인들도 부러워할 만한 집과 최고급 승용차도 생겼다.
집은 안더레흐트의 홈 구장인 반 데 스톡 스타디움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2층으로 된 흰색 단독주택이며 조그마한 정원도 딸렸다. 현재는 가족 3명에다 가사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같이 산다.
차는 구단이 마련해준 벤츠 C클래스와 월드컵 4강 보너스로 받은 그랜저 XG를 번갈아 탄다.
일주일에 두번 영어 교습을 받고, 틈틈이 불어도 공부한다. 이것이 모두 오랫동안 꿈꿔왔던 빅리그로 가기 위한 준비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만큼 이젠 꿈을 이룰 차례라고 생각한다
< 브뤼셀(벨기에)=스포츠조선 추연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