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모음 22개를 사용해 중국의 소수민족 로바(Lhoba)족 언어를 적는 시스템을 고안한 성균관대 중문과 전광진 교수.<a href=mailto:choish@chosun.com>/최순호기자 <

언어만 있을 뿐, 아직도 문자(文字)를 갖지 못한 지구촌 오지의
사람들에게 한글을 '수출'한다!

한 한자(漢字) 전문가가 한글을 이용해 중국 변방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의 전광진(全廣鎭)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전 교수는 "한글이 한반도에서만 쓰여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고 말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목놓아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언어를 적을 때 아예 한글을 쓰는 활용 방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알파벳은 수백 종, 아라비아 문자와 키릴 문자도 각각 20여 종의
언어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글이 진정 우수하다고 한다면 알파벳처럼
다른 언어에도 활용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 교수는 조선일보에 5년째 '생활한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중국
언어·문자 전문가. 그는 현재 중국 내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21개
민족이 문자를 갖지 못한 것에 착안,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보급
방안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선택한 민족은 시짱(西藏) 자치구 동남부 히말라야 기슭에
살고 있는 로바(Lhoba·珞巴)족. 20만~30만명에 이르는 전체 인구 중
대부분은 인도에 살고 있고, 중국 국경 안에는 2300여명이 거주한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농한기엔 수렵을 겸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로바족의 언어는 자음 22개와 모음 7개 등 모두 29개 음소(音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소 수가 비교적 적어 한글 자모(子母)로 바꾸기가
쉬운 편이었죠." 전 교수는 국제음성기호(IPA)로 적힌 로바어를
▲음성학적 유사성 ▲현재 사용되는 한글 자모의 최대한 활용 ▲보조 기호의
사용 최소화라는 세 가지 원칙에서 한글로 바꿨다.

그 결과 작년 말 한글 자음 15개(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 ㅈ ㅊ ㅎ
ㄲ ㄸ ㅃ ㅉ), 모음 7개(ㅏ ㅓ ㅗ ㅜ ㅡ ㅣ ㅔ)로 '로바어―한글
서사법(JLH 시스템)'을 완성했다. '소가 풀을 먹고 싶어한다'는 뜻의
로바어는 '고다: 따삐: 도: 능 다', '당신 담배 피우지 말라'는
'노: 므끄 ? 이오 까',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는 '꼬:
세: 땅 다 뽁 다', '들소 고기는 삶아서 먹습니까?'는 '서벤 이딘 껑
거 도: 더보 이에?'로 적을 수 있다.

"현재의 한글보다 자모가 훨씬 많은 '확장판 한글'을 문자 없는
민족에 보급하려 한 예는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컴퓨터 처리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죠."

전 교수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 숱한 노력 끝에 음절
첫머리에 나오는 자음 'ŋ'을 'ㅇ' 대신 ' '로 적도록 한 것만
빼고는 모두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할 수 있게 했다.

로바족이 실제로 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중국 정부의 공인이 필요하겠지만,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이미 한글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알파벳보다 한글을 사용하는 게 더 쉽고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중국어-티베트어 동일 어원어휘연구' '중국 문자-훈고학 사전'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