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군 하월천리 컨테이너박스 마을 모습./襄陽=<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지난해 여름 수해(水害)로 일터와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하월천리.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는 곳곳이 파손된 채로 남아있다.
동네는 푹석 주저앉은 비닐하우스와 썩은 나무, 자갈로 그득하다. 이
속에서 '컨테이너 수재민' 7가구의 주민들은 곧 설날을 맞을 것이다.

이종영(68)씨는 "지금껏 살아온 걸 일일이 하소연하면 뭐하노, 속만
아프제. 그냥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전날 밤에는
강풍으로 3개밖에 없던 화장실 한 곳이 부서져 못쓰게 됐다면서,
"그나마 이 컨테이너마저 날아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웃주민 최승달(51)씨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라고 마치 달관한 듯 말했다. 그러나 오세창(70)씨는 설을 앞두고
연락이 온 아들 내외에게 "앉을 곳도 없는데 오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수해를 당한 강릉시 장현동의 주민 김진하(60)씨. 설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그는 부쩍 일자리를 찾느라 열심이다. 허탕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외손자들에게 설 선물이라도 하나 쥐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넉달째 머물고 있는 임시 거처인 5.5평짜리 컨테이너박스에는
손바닥만한 방 안에 옷장, 취사도구, 가재도구 등이 복닥복닥 널려있다.
박스 틈 사이로는 찬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전기장판과 온풍기에
의지하고 있지만 방 안에서도 두툼한 겨울 점퍼를 벗을 수 없다. 아내
박영자(57)씨는 전기요금부터 걱정했다. 그녀는 "한전에서 2월까지는
그냥 전기를 넣어주지만 3월부터 전기세를 납부하라는 통지를
보내왔다"며 "빨리 봄이 와서 날씨가 좀 풀려야 할 텐데"하고
걱정했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집을 잃고 컨테이너박스에서 살고 있는 김선자 할머니와 외증손자들이 추위로 이불을 두른 채 생활하고 있다./江陵=<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컨테이너박스 20여개가 들어서있는 장현동 마을은 흡사 황량한
'난민수용소' 같다. 주민의 대부분은 노인이다. 이재우(86) 할머니는
"어차피 갚지 못할 텐데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며 새 집을
지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컨테이너를 영구주택처럼 여기고 여생을
여기서 보낼 작정이다. 할머니는 요즘 인근 사찰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죽기 전에 자식들 잘되라고 불공이라도 열심히 드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큰물에 방 2칸짜리 집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 박선자(81)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풀기 없이 "돈도 없고 더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나"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사는 컨테이너박스는 이음매 사이로
파고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곳곳에 테이프를 붙여놓아 누더기처럼
변했다.

전국적으로 지난해 루사 태풍이 남긴 피해는 사망 235명, 실종 34명,
이재민 7만7234명, 주택 파손 3만6434채, 재산 6조660억원이었다. 강원도
내에서만 134명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실종됐으며, 임시 거처로
컨테이너박스 1510동이 공급됐다. 이들에게도 똑같이 설 연휴는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