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잇기위해 사표를 낸 강승모(오른쪽)씨와 그의 아버지 강순걸씨.


지난 27일 오전, 과천 정부청사 5층 재정경제부. 강승모(康承模·41)
금융협력과장은 사표를 냈는데도 여전히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침 회의에 참석하고 결재서류를 작성했으며, 부하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도 했다.

"사표를 냈다고 그냥 떠날 수 있나요. 사직서 처리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 저는 공무원입니다."

관료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골뱅이 가업(家業)'을 잇기 위해 보름 전
사표를 냈다.

이날 오후 서울 역삼동 역삼벤처텔 17층의 ㈜유성물산 대표이사실.
'유동 골뱅이' 브랜드로 유명한 이 회사 강순걸(康淳杰·70) 사장은
장남에게 물려줄 회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바로 손봐야 할 사항,
거래처와 만날 때 유의할 점 등을 꼼꼼히 챙겼다. 강씨 부자의 '가업
잇기'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 과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4년 재학 중 행정고시(28회)에 합격한 '잘
나가는' 공무원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는 훌륭한 '경제 정책가'를
꿈꿔왔고, 자신이 '골뱅이 사장'이 될 것이라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시 동기생 중에서 선두를 달려가던 그는 작년 3월 인사에서도
재경부 과장급 50여명 중 최연소로 과장에 진급했다.

그러나 '골뱅이집 아들'은 이제 '공직자의 꿈'을 접고 부친이 걸어온
인생을 따라 항로를 바꾸고 말았다. "작년 가을이었죠. 제가 해외출장
중에 아버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평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저에겐 큰 충격이었죠."

작년 12월 어느 날, 강 과장은 "이제 네가 회사를 맡아줘야겠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혼자 산에 오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친구들과 술도 마셨다. 며칠간은 잠을 자지 못했다.

"여기서 길을 바꿔야 하나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내리더군요. 하지만
골뱅이 회사는 아버님에겐 분신(分身)과도 같았어요."

강 과장은 결국 부친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의 8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포도주 업체들처럼 '골뱅이 명가(名家)'를 이뤄보고 싶다는
의욕도 생겼다.

부친 강씨는 장남이 너무도 당연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다.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고마운 마음도 별로 없다고 한다. "아들의 꿈을 막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부친 강씨는 "공무원의 길이 있는가하면,
기업인의 길이 있어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이젠 머리 좋은 사람들이
관청이 아니라 기업에서 일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