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로재판을 받고 있는 정성옥씨는 “타인을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연습하는 군엔 들어갈 수 없었다 ”며 “대체복무가 허용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할 각오가 돼 있다 ”고 말했다.<a href=mailto:wjjoo@chosun.com>/주완중기자 <

정성옥(鄭成玉·28)씨는 ‘엘리트 과학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9년 동안 학사와 석·박사 과정(물리학)을 모두 마쳤다. 그런 그가 군입대를 거부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연구기관 같은 곳에서 5년간 비교적 편하게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던 그는 지난 2001년 9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취직도 못하고 세미나 등을 찾아다니며 소일하고 있다.

유호근(柳昊根·26)씨는 비종교적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 중 1명이다. 어릴 때 씩씩한 국군장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었다는 그는 작년 7월 병역거부를 선언, 병역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대학 입학 후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접했다는 그는 같은 인간 사이에서 총을 겨누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특정 종교인들의 특수한 문제로 치부됐던 ‘양심(또는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입대를 한 뒤 집총을 거부해 영창생활을 택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최근 들어 입대 자체를 거부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데다, 비종교적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는 일반인들이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단죄(斷罪) 일변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작년 1월 병역법에 대한 위헌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청했다. 같은 해 2월엔 민변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www.corights.net)’를 발족했다. 연대회의는 입법청원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에 착수, 작년 말까지 6만5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론은 헌법 위배 여부 평등권 침해 여부 대체복무제 적용 등을 놓고 팽팽히 맞서 있다. 한쪽에선 헌법상 보장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헌법상 국방의 의무와 국민개병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병역 거부 지지자들은 독일 등 외국사례를 들며 호스피스·양로원 등에서 현역복무보다 더 장기간 공공봉사 활동을 통해 대체(代替)복무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병무청은 집총 자체를 거부하고 4주간 기초군사훈련과 8년간 예비군 훈련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것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80여개 국가 중 사회봉사를 통한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는 국가는 독일·대만·오스트리아·덴마크 등 30여개국. 러시아·우크라이나·쿠바·폴란드 등 상당수 사회주의 국가들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 또는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대체복무를 택할 경우 현역복무보다 기간이 훨씬 길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비종교적 이유로 입대를 거부,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지난 14일 보석으로 석방된 서울대생 나동혁(羅東爀·25·수학과 4년 휴학)씨는 “형무소에 간다는 것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나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가난과 전쟁을 모르는 속 편한 세대의 안이한 생각이 아니라 나름대로 올바른 삶을 살려는 고민의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