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건물이 빼곡이 들어선 포츠다머 플라츠의 현재 모습(아래).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자리를 재개발한 이 곳은 도시 재개발을 시작하던 1995년에만 해도 폭격맞은 것처럼 텅 비어있었다(위).

21세기, 국가와 국가가 아니라 도시와 도시가 경쟁을 벌인다. 지금, 전
세계 도시들은 레노베이션(개조) 중이다. 도시개발의 핵심 키워드는
스케일·네트워크·컨텐츠. 건축 디자인 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총체적
힘이 맞부딪치는 경쟁이다. 잠자던 도시 일부분을 흔들어 전체를
혁신하는 도시 혁명의 현장을 찾아간다. 개조에 성공한 위대한
도시들로부터 서울 강북 뉴타운 개발과 청계천 복원의 귀감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아본다. (편집자)


전면이 유리로 된 첨단 건물들이 방금 닦은 것처럼 햇빛에 반짝이며
원형으로 늘어서 있다. 건물 위로는 후지산 만년설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흰색 돔형 지붕이 얹혀 있고, 그 아래 원형 광장 '포룸'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베를린 중심부 23만㎡의 공간에 기업 사무실에서
아파트·영화관·쇼핑몰·호텔·카지노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집약돼 있는 곳,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다.

돌과 잡초가 무성했던 구동독 경계의 '노 맨스 랜드' 포츠다머
플라츠가, 베를린 최대의 비즈니스 지구이자 최고의 만남 장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30년 동안 베를린 장벽이 자리잡고 있었던 황량한 땅이
베를린의 21세기 대표 도심으로 떠오른 것은 독일 정부가 '동·서
베를린 균형개발' 차원을 넘어 '21세기 유럽의 수도'를 만들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비무장지대(DMZ)에 신도심을 조성한
셈이다.

베를린시는 직접 포츠다머 플라츠 재개발을 주도하는 대신,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개발계획 공모를 실시했다. 91년 외국인
전문가들이 절반 정도 참여한 심사를 통해 독일 '힐머 앤 자틀러'사의
계획안이 당선됐다. 그러나 시는 계획을 성급히 현실화하는 대신, 철저한
법제화 작업을 앞세웠다. 상·하수도 연결과 버스 노선, 우체통 위치 등
개발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참여한
자문기관만도 60여곳, 분야별 전문가 수는 120명에 달한다. 그렇게 일단
큰 그림이 완성되자 이 지역에 들어설 개별 건물 설계 공모가 또다시
진행됐다. 이탈리아 출신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다임러 크라이슬러
건물을 맡았고, 미국에서 활동중인 독일 건축가 헬무트 얀이 소니센터
건물을 맡았다. 1차 공모에서 정책적인 목적이 주고려 사항이었다면, 2차
공모에선 도시 미학적인 목적이 우선 적용됐다.

그렇게 탄생한 포츠다머 플라츠는 현재 '동·서 베를린의 구분을 없앤
공간'으로 인정받는다. 역사의 파란만장함과 21세기적 생동력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2002 월드컵 때 서울 시민들이 광화문에
집결했다면, 베를린 시민들은 포츠다머 플라츠로 몰렸다. 서베를린에서
열리던 베를린 국제영화제도 이전해 왔다. 아예 유럽 본부를 이 곳에
세운 소니 센터에는 하루 2~6만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지하철 4개
노선과 연결돼 교통 체증도 거의 없다. 힐러 앤 자틀러의 토마스
알브레히트 공동 대표는 "집권당이 바뀌어도 시 정부가 변함 없이
지원해준 것"을 개발 성공 요인으로 꼽으며 "도시 개발이라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 정신으로 무장한 포츠다머 플라츠가 들어섬으로써 패전도시
베를린의 역사가 희망의 색으로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는 데 세계는
주목한다. 명실상부한 '유럽의 심장부'가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착수
10년이 지난 지금도 포츠다머 플라츠의 리노베이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0년간 수그러들줄 모르는 그 역동성이 고도(古都)
베를린을 30년 더 젊게 만들고 있다.

본래 이곳은 1920년대 유럽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았던 '독일의 트라팔가
광장'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나치 정권과 함께 처참히
파괴됨으로써 '번영의 상징'에서 '전쟁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가로질러 세워진 뒤로는 아무도 살지 않는
'분단의 상징'이 됐다.

89년 장벽이 붕괴되고 통일 독일이 수도를 베를린으로 이전하면서
'통일의 상징'으로 부상했고, 91년 전세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개발 공모를 실시한 뒤로는 유럽 최대의 건축 현장이 됐다.

(포츠다머 플라츠(베를린)=이자연기자 ach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