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씨는 “5년간의 재판을 거치면서 나도 내 독자도 많이 늙었다 ”면서 “이제 50대에 다다른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 ”고했다.<a href=mailto:ykjung@chosun.com>/정양균기자 <

"'무죄'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화가 먼저 났습니다. 이
두 글자의 판결을 받으려고 5년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성질이 막
나더라구요. 이틀이 지난 이제는 좀 차분해집니다. 만화계를 위해서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나, 내 자신을 위해서나, 이현세, 너 그동안
고생했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26일 만난 이현세(李賢世·47)씨는 홀가분해 보였다. 머리에 눌러쓴
날렵한 캡도 그의 기분을 상징하는 듯 했다. 지난 24일,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창작의 자유'를 놓고 그가 벌인 5년간의
법정싸움을 마무리지은 날이었다. "한국의 상고사(上古史)를 100권의
만화로 재구성하겠다"는 야심과 함께 펴낸 만화 '천국의 신화'.
검찰은 지난 98년 2월 그 만화의 수간(獸姦)장면 등 몇몇 사례를 들어
"음란하다"며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했고, 이를
'창작의 자유'문제로 판단한 그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던 것. 1심은
검찰을, 2심은 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2심 판결 이후 검찰의 기소
근거였던 '미성년자보호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고,
대법원은 이에 따라 그의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의 소감과 심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날것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 이번 무죄의 의미를 스스로는 어떻게 보나.

"솔직히 내 작품이 '음란하지 않다'는 판결로 무죄를 확정지었으면
했다. 실제로 2심은 그렇게 판단을 해 줬던 거고. 그런데 이번 판결문에
따르면 원인무효라는 것이다. '미성년자보호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검찰의 상고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 위반인 법률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했다니, 허탈하다."

-- 만화계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동안 사실 만화가들의 '검열 컴플렉스'가 컸다. 이번 재판을
계기로 스스로의 자기 검열과 압박이 조금은 풀릴 수 있지 않을까 본다.
만화계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격려해준 선·후배들께 감사한다."

-- 5년간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처음 3년 동안은 매달 한 번씩 재판을 받았다.
다 합쳐서 50차례는 될 거다. 그동안 판사가 4번, 검사가 6번
바뀌었는데, 나는 혼자서 같은 소리를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의욕을
가지고 해외 취재를 떠나려는데 여권허가를 받기 위해 검찰청, 법원,
경찰청을 거쳐 다시 검찰로 가야 했다. 매번 나갈 때마다 그 절차를
거쳐야 했다."

-- 그동안 작품활동도 거의 못했던 것으로 안다.

"엄살같지만, 사실 나는 이것 때문에 작가로서는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 가까스로 써놓고 나서 그림을 그리다보면 연필이 딱 멈춘다.
거칠게 얘기해서 '젖꼭지' 하나 그리는데도, 시비 걸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자기검열이 나를 망친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그림 때문에 재판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는 지난 12월31일로 대부분의 화실 식구들 내보냈다고 했다. 20명에
달하던 문하생·식구들도 이제 단 한 명이 남았다.

-- ‘천국의 신화’는 이제 어떻게 되나.

"11권이 나온 이후 재판과정에 들어갔고, 4년 6개월 동안 쳐다보지도
못했다. 한 1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신바람이 나질 않는다. 지금 단군의 아버지 환웅시대를 그리고 있는데,
일단 단군까지는 마치려고 한다."

-- 이제는 훌훌 털고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좀 마음을 추스려야 겠다. 이제 혼자 남았으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작품보다 늙어가는 나의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을
하고 싶다. 또 '천국의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자는 계획도
있다. 올해는 내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이 나온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는 좀 기운을 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