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의 반미(反美) 기운이 약간 소강상태에 들어서는 듯하더니 한때
긴박했던 한·미 관계에 대한 예각적 관찰들이 따라서 잠잠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한·미관계에 든 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북한 핵(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서 한·미관계는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입고 신음소리를 안으로 삼키고 있을 따름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초에 걸쳐 한국 내의 반미시위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당국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깊은
우려'와 함께 사태악화에 따라서는'철군 불가피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소식통은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두 번째는
외교경로를 통해, 그리고 또 한 번은 청와대를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아마도 노무현 당선자가 집중적으로 외국 기업인들과의 모임을 만들고,
미군부대를 방문하며 미국특사를 특별히 만난 것은 그 무렵 이후인 것으로
보아 우리 측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감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 당선자는'촛불시위'를 옹호하면서도'반미는 일부'라고 축소하는가
하면 자신의 방미를 우선적으로 실현하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뒤로 이어지는 총리 인선, 경제각료들의 하마평 등을
살펴볼 때 새 정부의 진로에 대한 외부의 시각을 고려한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어쩌면"노 당선자의 연설과 답변을 듣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한 전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의장 제프리 존스씨의 발언은 그런 대목의 백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번져나오는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한국의 소강과는 달리
점차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리처드 알렌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한국 정부의'중재자 역활'제안에
대해'심각한 배신(a serious breach of faith)'이라고 극단적 용어를
썼다. 최근 미국 정계와 관계를 돌아보고 온 한 정치인은 미국 지도층
인사들이 한국에 대한"배신감(sense of betrayal)을 깊이 느끼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의회 주변에는 한 중진 상원의원이 서울의
최고급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맨 뒤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의원들은 저마다 철군을 요구하는
지역주민과 미군들의 진정서를 수십통씩 받았다고 하는 말들이 공공연하다고
했다.

게다가 북한 핵과 행정부의 대북정책 그리고 한·미관계 등은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향한 공화·민주 양당의 당파적 쟁점으로 변하고 있고, 북한과
이라크를 대비한 비중과 우선순위의 시비로 미국은 바야흐로'한반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마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반미와 미국의 반한(反韓)은 내연상태로 가고 있다.

흔히들 한국의 식자들은 미국이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상,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미국은 비록 자신들의 결정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라도 여론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한 나라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신뢰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미국인들이 제일로 치는
사람은'신념있는 사람(man of faith)'이다. 여간해서'배신'을
거론하지 않지만 일단 배신을 거론하면 그 결과는 지극히 감정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코 미군철수 또는 동맹의 철회에 머물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그 결과는 경제적 철수일 수 있으며 거래의 단절일 수
있다. 오늘의 반미와 철군 사태가 단순히 감정의 대립에 머물지 않고
한국 경제의 고립과 파국으로까지 확산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떨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새 정부의 지도층은 자신감과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자긍심을
살리는 외교와 안보는 아주 이상적이다. 어려운 것은 두 가지가 상충할
때다. 우리에게는 북핵도 중요하지만 한·미관계의 바람직한 복원이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 노 당선자와 새 정부의 책임자들은 과거 미국과
세계화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졌었든지 구애받지 말고 오늘의 관점에서
한국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할 각오로 한·미 관계에 임해야 할 것이다.

(理事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