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지음/에세이/15000원)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질병이 아니다. 질병이 가진 낙인, 질병이 가진
이미지, 질병에 선험적으로 학습된 부당한 공포다. 한마디로 질병의
'은유'다. 이 책은 뉴욕 출신의 손꼽히는 소설가·평론가·에세이스트
손택(70) 여사가 결핵, 암, 에이즈를 중심으로 재래식 문학이 질병에
덧씌운 상상력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심하게 말하면 문학은 질병을 '악용'(?)해왔다는 것이다. 가령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머무르는 아름다운 요양소'라는 배경 설정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 "파괴적인 열망"의 모습으로 신화를
만들고, 이를 "문화적 경건함"으로 발전시켰다. 결핵 환자가 하얀
손수건 위에 뱉어놓는 선홍빛 객혈 보다 더 "문학적인" 장면이 있을 수
없었다. 손택은 45세에 결핵으로 숨진 DH 로렌스,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 다보스의 결핵요양소에 7년이나 머무르는 내용을 담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가족 모두가 환자인 유진 오닐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행'을 예로 든다.
손택이 다섯 살 때 그녀의 아버지도 결핵으로 숨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세번 속였다. 처음은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엔 죽음의 원인을,
마지막엔 무덤의 위치까지 속였다. 이유는 단 하나, 당시엔 결핵을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손택은 37세에 유방암을
선고 받고 파리에서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이후 "질병과의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질병 그 자체, 그리고 환자의 재활의지를
꺾는 질병의 은유가 공격 목표였다.
질병은 또 주로 이방인과 관련돼 있는 것처럼 꾸며졌다고 손택은
분석한다. 그것을 문학적 알레고리를 뛰어넘는 근거없는 욕설이었다.
매독은 영국인들에게는 '프랑스 발진'이었고, 파리 사람들에게는
'독일 질병'이었으며, 플로렌스 사람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에게는 '중국 질병'이었다. 질병 보다 '질병의 은유'가 더
불합리하고 폭력적이었던 셈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백색 역병'이 파시즘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희곡에 나오는 질병은 "당연히" 아시아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손택은 "질병은 재앙도 천벌도 아니며, 이즘(-ism)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치료해야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목적은 "문학과
철학에서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쫓아내고, 우리가 질병,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을 제대로 대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