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테니스라기보다는 한 판의 혈투였다. 경기시간은 4시간 59분.
지난 71년 타이브레이크제도 도입 이후 호주오픈 사상 최장시간
기록이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어 있었고 두 선수는 땀으로 목욕을 한
듯했다. 마지막 제5세트의 게임스코어는 무려 21―19였다. 보통의 테니스
한 세트에 나오는 스코어의 3배가 넘는다.
승자인 앤디 로딕(미국·세계10위)도 자리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고
패자인 엘 에노이(모로코·세계22위)도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밤중까지 호주 멜버른 센터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
못박혀 있던 관중들은 두 젊은이의 대하 드라마가 막을 내리자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미국의 차세대주자 앤디 로딕이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엘
에노이를 3대2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로딕은 독일의 라이너 셔틀러와
결승행 티켓을 다툰다. 앤드리 애거시(미국)와 웨인 페레이라(남아공)도
준결승에서 맞붙는다.
근래 보기 드문 경기였다. 로딕은 1세트를 4―6으로 빼앗겼고 2세트에선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7―5로 이겼다. 그러나 다시 3세트에서 4―6으로
뒤져 위기에 몰렸지만 4세트를 6―4로 빼앗아 힘겹게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5세트에서 6―6으로 승부를 내지 못한 둘은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이며
숨막히는 승부를 이어갔다. 그랜드슬램인 호주오픈의 마지막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2게임 이상 차이가 나야 승부가 가려진다.
로딕이 최고 시속 220㎞의 맹렬한 서비스로 에이스를 터뜨리면 에노이도
질세라 패싱샷을 꽂아 넣었다. 결국 게임스코어 19―19에서 로딕이
에노이의 서비스를 브레이크, 20―19로 앞섰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켜 21―19로 이기며 대혈전의 막은 내렸다. 마지막 세트에 걸린 시간만
2시간 23분으로 오픈대회 역사상 최장시간을 기록했다.
여자부에선 세레나 윌리엄스(미국·1위)가 메건 쇼네시(미국)를 2대0으로
간단히 제압, 전날의 언니 비너스(2위)에 이어 준결승에 진출했다.
세레나는 아나스타샤 미스키나(러시아)를 역시 2대0으로 제압한 벨기에의
킴 클레스터스와 결승 티켓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