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촌에 나갔다. 길을 걷다가 예전에 학교 다니던 시절의
거리풍경이 떠올랐다. 특히 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이
있던 자리가 생각났다. 지금은 휴대폰 대리점 으로 변해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엔 그 날의 일당으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가졌다. 자그만 서점 안에 그 시절 대학생들의 필수적인 교양서적들이
진열돼 있고, 책꽂이 앞에 놓인 긴 의자들은 책을 찾는 이들에게 안식처
역할을 했다. 연극과 문학에 막 눈을 뜨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오늘의 책'은 보물상자나 다름없었다. 거기에서 알게 된, 책을
좋아하는 여러 선배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바람직한 독서의 기준을
만들어주었고, 창작에 대한 자극제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오늘의 책' 주변에 있던 좋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도 '오늘의 책'이 분명 안타까운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책'은 그곳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상업지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학교 앞에 학생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서점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요즘, 성균관대 입구를 지나다가 '논장'이라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발견했다. 학교 동문들이 힘을 모아 새롭게 단장한
보기 드문 공동체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길에는
'풀무질'이라는 작은 서점까지 여전히 건재하고 있으니, 그 길을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김재엽·희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