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정책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 당선자는 18일 KBS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노무현은 분배 우선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이며, 성장과 분배는 최소한 병행
추진해야 한다"며 "지금 한국상황은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분배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는 이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재벌개혁,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 등 기존 경제 공약을 그대로 추진할 뜻을 밝혔고, 또
불가피할 경우 기업들이 정규직원에 대한 해고를 합리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 성장과 분배 동시 추진 =이날 TV토론에서 노무현 당선자는 "분배가
잘못되어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 사회의 유효 수요가 줄어들고, 결국
경제를 침체시킨다"며 "(정부에 의한) 2차 분배인 사회복지혜택은
보완적인 기능을 하고, (시장에 의한)
1차분배(임금·이자·이윤·지대)에 역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노 당선자의 이 말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방향은 맞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희대 권영준(權泳俊) 국제경제학 교수(경실련
금융개혁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선(先) 분배, 후(後) 성장'으로
경제가 일어선 예가 없다는 점에서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진'은
당연하다"며 "노 당선자가 많은 얘기를 들어서인지 '중립적인
인식'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김장호(金章鎬) 경제학부 교수도 "노 당선자가 일하는
사람에게 많은 몫이 돌아가는 1차 분배가 2차 분배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은 노령 사회의 후유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진이 과연 성공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서강대 김병주(金秉柱) 경제학 교수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는 원론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그것을 이루느냐는 것"이라며 "김대중(金大中) 정부도 서민에
대한 지원 강화 등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부동산 투기와 코스닥
거품 등으로 인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올해 봄 '노동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노정부 경제 정책의 성패(成敗)가
갈릴 것으로 예측했다. '친(親) 노동'이라는 노 당선자의 성향을
기대하고 노동계에서 무리한 요구를 내걸며 투쟁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노동시장의 유연성 =노 당선자는 이날 TV토론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각하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도 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7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원에 대한 차별 철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노동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듯한 발언이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비정규직이 양산된 이유에 대해서는 기업의 의견을
100% 수용했다. 노 당선자는 "(기업들이) 해고가 까다롭기 때문에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꺼리니까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없다"며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도 불가피할 때 해고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해고 요건을 완화, 정규직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춰야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 당선자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재벌개혁 정책을 그대로
추진할 뜻임을 명백히 했다. 노 당선자는 "지나친 독점을 규제하고,
부당 내부 거래와 불투명한 경영을 규제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는
규제이지만, 전체 경제에서는 규제를 푸는 것"이라며, 증권분야
집단소송제 도입, 출자총액제한 제도 유지 등의 정책을 펼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