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출판사 대표가 한숨을 폭, 내쉬었습니다.

"요즘은 출판기획자는 많은데, 편집자는 없어…. 엉덩이 질기게
붙어앉아 책만 들이 파는, 그런 편집자들이…."

갑자기 그를 떠올린 것은 조선일보 Books 담당 기자들끼리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하던 중입니다. "㎝, ㎞ 써야될 곳을 m로 썼어요. 그것도 과학
읽을거리라는 책이!" "엉뚱한 데는 한자를 표기해주고, 일본 인명,
지명에는 한자가 없네," 책 많이 읽기로 이름난 다른 기자도 불쑥
끼어듭니다. "뭐뭐인 채, 라고 해야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라고 썼더라구요. 필자는 그런 줄 알았는지 몰라도, 편집자들은
뭘 한건지 모르겠어요."

신년 기분을 느껴볼 틈도 없이 또 평범한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년이라고 특별히 쉬는 분위기도 없이,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 겨울 방학이야말로 진짜 독서의 계절이라기에, 어느 때보다 더
다양하게 많은 책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획'의 산물인 책들을 보면서, 앞의 출판사 대표가 한 말을
거듭 거듭 실감합니다. 독일작가의 역사물을 번역한 책 하나는, 등장인물
표기 방식이 말 그대로 천방지축입니다. 영국인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드라케'라고 썼기에 독일어식으로 표기했나보다 했지만, 뒤로 가면
다른 것은 또 다 영어식 발음대로 옮겼습니다.

"안냐세염~" "방가방가!" 같은 줄임말이 '표준어'가 된 인터넷
언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정 미디어에서만
발견되는 일종의 '또래 문화'라고 보는 시각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터넷 글쓰기에 익숙해진 세대들이 이제 책도 인터넷 수준의 관용도로
만들고 읽고 하는 건 아닌지요. 엉덩이 질긴 편집자들이 재바른
기획자만큼이나 많아지길 기대하는 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박선이 Books팀장sunnyp@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