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러비드(Beloved)’
(토니 모리슨 지음/김선형 옮김/들녘/1만3700원)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누굴까
궁금해졌다. 그가 이 소설로 1998년 퓰리처상을 탔고, 앞서 1993년에는
'재즈'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쥔 유명 작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바로 그런 유명세 때문에 책을 집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책장을 넘기며 더욱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노예제를 이토록 몸서리치도록 리얼하게 묘사할 수 있는 작가라면 그는
흑인, 그것도 여성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책 날개에 인쇄된 토니 모리슨의 얼굴. 그것은
곱슬머리의 영락없는 흑인 여성이었다.
이 소설은 '6000만명, 그리고 그 이상'이라는 헌사(獻辭)로 시작된다.
이 숫자는 미국의 노예제로 희생된 흑인들의 수를 의미한다. 헌사가
암시하듯 이 소설은 가해자인 백인이나 피해자인 흑인 모두 망각하고
싶어하는 '노예제'라는 미국사회의 제도적 폭력에 맞서 싸운 한 여인의
파괴적인 모성애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1856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실제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마가렛 가너라는 흑인 여자노예가 탈출 하루만에
노예 사냥꾼들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막내딸을 단칼에 베어 죽이고
나머지 아이들까지 살해한 뒤 자살하려다 붙잡힌 사건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시이드(Sithe) 역시 노예 사냥꾼들에게 붙잡히게
되자 "백인들의 노리개가 될 딸 아이의 운명을 저지하기 위해"
제손으로 아이를 살해한다. 그리고 석공에게 몸을 팔아 죽은 아이의
무덤에 '사랑했던 내 아기(Beloved)'라는 일곱 글자를 새긴다. 그러나
죽은 아기는 잠들지 못하는 원혼이 되어 어머니와 가족 주변을 배회한다.
아기의 한은 미국 흑인들의 악몽같은 종족의 한을 상징한다. "어느
집이든 서까래까지 꽉꽉 들어찬" 과거의 원혼들과 시커먼 무덤처럼 입을
벌린 시뻘건 상처의 기억들이 서리지 않은 집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제목 '빌러비드'란 역설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통칭한다.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젊은 청년들, 물
속에서 건져올린 머리카락과 살점이 아직 붙어있는 흑인소녀의 빨간
리본, 등짝에 벚나무처럼 가지를 뻗은 피묻은 채찍의 흔적, 헛간에 갇혀
백인 부자에게 날마다 강간을 당하던 악몽…
그러나 이 소설은 단지 노예제를 비판하는 고발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강간과 폭력, 살인으로 점철된 기존 흑인노예 소설의 상투성이나
멜로드라마적 요소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와 역사를 생각하되 사람을
결코 잊지 않고, 한없는 애정으로 사람을 보되 감상에 휘말리지 않으며,
주장하고 외치되 시(詩)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 소설은 한판의 어지러운 '살풀이 굿'이다. 작가는 남북전쟁 직후로
돌아가 노예제와 노예제가 남긴 상처의 뿌리를 캐고, 끔찍했던 과거의
악몽에 직면함으로써 미국 흑인종족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굿판을 벌인다.
작가는 결코 주인공 시이드의 행위를 미화하거나 감상적 측면을 부풀리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운명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시이드의
인생을 지켜보고, 끔찍한 죄과를 치르게 하며, 또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변명할 기회를 주고, 그런 과거를 지니고도 미치거나 죽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의 강인함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며, 도덕적 판단이나 감상적
연민을 뛰어넘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작가 마가렛 애트우즈는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머리카락이 쭈볏 서는 걸작"이라고 이 작품을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