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표정과 몸짓은 류승범 연기의 강력한 무기다.대본에 의존하기보다 애드립(즉흥연기)에 강한 류승범은 “영화 속 ‘껄렁한 ’캐릭터가 평소 제 모습은 아니예요 ”라고 말했다.<a href=mailto:rainman@chosun.com>/채승우기자 <


류승범(23)은 '미남 배우'는 아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분위기도 없다.
그러나 형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피도 눈물도 없이' 등에서 그가 보여준
'매력있는 아웃사이더'의 얼굴은 한국영화계 기대주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껏 불량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수줍은 데가 있는 묘한 표정,
손짓 발짓에서 뿜어나오는 끼와 에너지는 주머니 속 송곳처럼 금방이라도
스크린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가 처음 주연한 영화 '품행제로(감독 조근식·27일 개봉)'에서
'주특기'를 살려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것같은 개성 연기를 펼쳤다.
류승범이 맡은 역은 80년대 문덕고의 전설적인 '캡짱' 중필.
코흘리개들을 상대로 돈이나 뜯는 '양아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볼수록 안쓰러워지는 일종의 안티 히어로(반영웅)다. "아~
짜아식, 귀여운 맛이 있네"하면서 삐딱한 자세로 아이들 머리를 툭툭
치다가도, 좋아하는 여학생(임은경) 앞에서 갑자기 말을 더듬는 그를
보고 있자면, 중필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18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촬영할 땐 저 자신이 류승범인지 중필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감정 싣고 말고 없이 그냥 카메라만 들이대면 될 정도로
완전히 중필이가 돼 있었거든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영화를 포함해 류승범의 배역 중엔 유난히 '양아치' 캐릭터가
많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클럽 DJ생활을 했던 이력 때문에, 혹시
류승범이 '껄렁한' 청년 아닐까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제
류승범은 소심한 성격이고 예의 바르다는게 주변의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맞은 적은 있어도 남을 때린 적은 없어요. 그럴 배짱도,
권력도 없었고요. 중필과 공통점이라면 지독하게 외톨이었다는 점이죠."
류승범은 "어딘지 허술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그런 캐릭터를 맡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선 "건방진 얘기지만"
"유식한 표현을 빌자면" 같은 겸양 표현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중필을 좋아하는 '오공주파 두목' 나영 역은 류승범과 실제 연인
사이인 공효진이 맡았다. "덕분에 촬영장 가는 것이 더 즐거웠다"는
류승범은 그래도 민희(임은경)와 '뽀뽀'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좀
미안했단다. "그래도 영화가 아니었으면 언제 한번 공효진씨를 미워해
보겠냐"며 능청을 떤다.

그는 "영화가 어떤 건지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열정이
꿈틀거리는 그 꾸밈없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가 권법소년으로 다시
태어날 차기작 '마루치 아라치(감독 류승완)'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품행제로 ’에서 류승범이 임은경과 ‘뽀뽀 ’하는 장면.

'품행제로'는 가진 것도, 희망도 없던 한 80년대 고교생이 첫사랑의
순수를 만나는 이야기다. 신인 조근식 감독은 포복절도하게 웃기다가도
차차 가슴 한켠이 찡해지게 만드는 감각적인 연출력을 발휘했다. 키치적
화면을 만화책 페이지를 넘기듯 속도감 있게 끊어낸 편집도 깔끔하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며 무릎을 치며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많다. 중필이 돈을 세면서 '한 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를 읊는 장면, '스잔'의 김승진 팬들과
'경아'의 박혜성 팬들이 대립하는 장면 등 시대적 배경을 디테일하게
살려낸 솜씨가 최근 등장한 일련의 복고 영화들 가운데서 단연 돋보인다.
중필, 나영 모두 공부는 뒷전이고 싸움이나 하는 '양아치' 캐릭터지만,
놀라울 만큼 관객에게 공감을 준다. 특히 클래식 기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중필이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전학생 상만과 결전을 벌이는 장면은
웃음 속에 숨겨진 찡한 페이소스의 진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