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된 고전
(하루오 시라네 등 엮음/왕숙영 옮김/소명출판/1만9000원)
'만엽집(萬葉集)' '일본서기' '고사기'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
일본 내외의 교과서와 전집에 단골로 수록되는 일본 문학 불후의
고전들이다. 하지만 하루오 시라네·스즈키 토미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
부부는 이 작품들이 고전의 위치에 오른 것은 불과 100년 안팎이라고
주장한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에서 국민 정체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이들을 고전문학의 '정전'(正典)으로 끌어올렸다는
것. 그래서 최근 출간된 이들의 편저 제목도 '창조된
고전'(소명출판)이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주최 학술회의에 참가한 하루오·스즈키 교수
부부를 만났다. "19세기 이전까지 일본에서 고전으로 손꼽힌 것은
사서삼경(四書三經)같은 중국의 고전이었죠."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중국 고전은 배제되고, 일본 작품이 고전으로 재창조되는 변화를
겪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메이지유신은 정치적 변혁이었으나, 한편으로
민족주의와 함께 서구 학문이 들어와 일으킨 문화변혁이었어요. 이
시기에 문학이 형성됐고,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이용됐습니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작품은 '만엽집'. "만엽집은 8세기 나라시대
귀족에 의해 편찬됐고, 황족이나 일부 계층에 의해서만 읽혀졌으나
19세기 말 천황에서 평민까지 함께 창작에 참여한 국민 전체의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대에도 천황부터 평민까지 함께 즐기는 공통된 시가가
있었다는 거죠. 이것이 근대 천황제 국민국가의 근거로 이용됐어요."
이런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교과서에 편입된 것은 1890년 이후다. 하가
야이치와 다치바나 센자부로의 '국문학독본' 등 문학사에 한문 중심의
텍스트 대신 가나 중심의 작품들이 실린 것. 이에 따라 한문에 중점을 둔
종래 교과과정과 달리 정부 검정을 받은 1890년대 이후 중학교 교과서엔
일본 고전문학 정전으로 인정된 가나 중심의 텍스트가 실렸다. 예컨대
'중등 국어독본'(1893년)에는 '만엽집' '이세 이야기' '고금집'
'겐지 이야기' '쯔레즈레구사' '헤이케 이야기' '태평기' 등이
수록됐다.
국민국가 성립과 고전 형성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비단 일본 문학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유럽에선 근대 이전 그리스·로마시대 작품이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이 국민국가를
형성하면서 괴테의 작품을 고전화했고, 영국은 1차 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대항의식으로 자국의 영문학을 고전의 자리로
끌어올렸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예전에도 읽혔지만 교육현장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이 즈음입니다."
물론 이들은 고전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 고전의 위치를 부여해주고, 이용하는 제도에 주목해야한다는 것.
스즈키 토미 교수는 "지구화 흐름의 반대쪽에선 민족주의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면서 "이런 시각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갖게
하고 여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힘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