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에서 외지의 낯선 손님에게 밀빵을 들고 찾아온 마을 소년.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란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엔 이상하게도
음식 먹는 장면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전통 장례식을 사진으로
취재하려고 이란 오지 마을에 들어온 잡지사 팀이 2주일 이상 마을에
머물면서 만나는 삶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그렇다. 먹는 장면을
굳이 꼽자면 주인공 베흐저드가 딸기(그것도 딱 두 알)을 털어넣는
장면과, 허리도 못 펴는 촌로가 골목길에 앉아 흰 쌀죽 한 그릇을 비우는
장면 정도라고 할까.

주민들이 차를 끓이고, 우유를 짜고, 채소를 다듬고, 양떼를 몰고 가고,
심지어 베흐저드가 면도하는 장면까지를 시시콜콜 보여주면서도 먹거나
마시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건 뭘까. 아마도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의도적 절제'아닐까. 욕망을 소비하는 도시인과는 정반대로
검소-질박하지만 행복한 산골 마을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빚어내는
절제다.

이런 분위기의 영화 속에서도 4차례나 스크린에 부각되는 음식이 있다.
빈대떡 처럼 넓적하게 구운 이란식 밀빵이다. 인도의 난(nan), 멕시코의
토티야, 터키의 피데와 같은 계열의 이 밀빵은 그저 밀을 반죽해 철판에
구웠을 뿐인, 담백-검소한 유목민들의 주식이다. 마을 소년 파흐저드가
베흐저드에게 처음으로 건넨 선물도 이 밀빵이었다. "우리 엄마가
아저씨 갖다 드리래요"라는 말과 함께 3차례에 걸쳐 소년이 선물하는,
자줏빛 보자기에 싼 밀빵은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베푸는 이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 그 자체다. 소년과 베흐저드의 사이가 사소한
일로 틀어졌을때 베흐저드가 취한 행동도 소년이 가져온 밀빵을
"필요없다"고 거절하는 것이었지만, 그 거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 쓴 마을 아낙이 평안한 표정으로 밀빵을 굽는 장면도
있다.

군데군데가 노릇노릇, 대체로 흰색인 이 밀빵은 보여주는 대신 '감춰서
더 느끼게 하는' 이 영화의 미학, 그리고 순백을 예찬하는 테마와
조응하는 소박한 이미지로 뇌리에 남는다. 갈등을 녹이고 정을 소통하던
사람들이 먹던 '바베트의 만찬'의 프랑스 정식 카일레옹 사쿠바즈,
혹은 뒤엉킨 삶을 보여주던 최용훈 연출 연극 '돐날'의 엉킨
잡채가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