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 한국 대통령 5인의 시대를
차례로 희화화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비틀고, 부끄러운 풍경들을 거침없이
꼬집는 풍자영화가 제작에 들어갔다. 데뷔작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130만 관객을 동원했던 젊은 감독 김동원(金東元)이 만드는 '마르고
닳도록'이다.
한국 정치와 사회상 대한 풍자라는 점에서 유례없는 이 작품의 상상력은
연극에서 수혈받았다. 2000년 6월 국립극단이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공연한 이강백 작-이상우 연출의 연극 '마르고 닳도록'이 원작이다.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감독)을 만들었던 영화사 스튜디오 박스(대표
임진규)는 지난 7월부터 이 영화의 프러덕션을 시작했다. 현재 각색
작업중이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 촬영을 시작해 내년 연말 개봉한다. 영화
'마르고 닳도록'은 연극을 영화로 옮긴다는 점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가
된다.
●기상천외한 설정으로 현대사를 비틀다
다소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한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김감독은
"이강백의 '마르고 닳도록'을 만나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엉뚱하면서도 신선한 발상'이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설정이
기상천외하다. 애국가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이 임종 당시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던 사실에 착안, 스페인 마피아들이 한국 정부에 '애국가
저작권료'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이
'조폭'들이 65년부터 98년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한국에 원정와서
대통령들과 차례로 벌이는 담판과 소동을 그린다.
김감독은 "조폭 코미디 비슷한 껍데기를 가졌지만 무조건 웃기는게
목표가 아니라 세상을 돌아보는 재미를 함께 안긴다는 점에서 오락
코미디와 다르다."고 했다.
●어수선했던 우리 삶의 풍경들
'마르고 닳도록'은 지난 33년간의 한국 현대사를 녹여낸다. 마피아들은
최루탄에 울기도 하고 성수대교를 건너가다가 혹은 삼풍백화점에
쇼핑갔다가 붕괴사고로 죽는다. '몸 성히 살아내기도 힘들었던' 시대를
환기하고 '마르고 닳도록' 해먹는 권력층을 비판한다. 김감독은
"마피아들이 성수대교-백화점 붕괴를 자신들에 대한 살해 음모로 보는
대목은 정말 뒤집어지도록 웃겼다"고 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
80년대의 따스한 정을 추억했던 김동원 감독은 "난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의 체취가 있는 예술이 취향에 맞는다. 내 영화도 날이 선 풍자가
아니라 '농담속에 뼈가 있는' 정도의 꼬집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5인5색 정권을 드러낸다
영화 '마르고 닳도록'에서 역대 정권의 특색을 드러내는 대목은 가장
웃기는 부분중 하나다. '애국가 저작권료'를 내놓으라는 생떼 앞에서
5명의 대통령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박정희="이놈들 당장 쫓아내!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고 하고 있는데
저런놈들한테 기죽고 살기는 싫어!"
전두환=”애국가는 광주의 ‘폭도’들이 불렀는데 왜 나에게 손 벌려?”
노태우=“저작권료요? 드려야지요…”하면서 물에 물탄 듯 약속을 안지킴
김영삼=“군사정권에서 한 일은 난 절대 모른다.”
김대중=“그것 참…. 그 저작권료가 얼마요? 참말로 환장할 일이네…”
이른바 '조폭코미디'로 불리는 황당한 설정의 액션코미디가 휩쓰는
가운데 저무는 2002년. '마르고 닳도록'은 '조폭 코미디'의 흐름을
발전적으로 이어가는 진화(進化)가 될수도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