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모나코에서 열린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경쟁은 한국의 전략부재(不在)와 관련기관의 협조부족으로 인해 참담한 실패극으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민간기업이 모두 유치전에 뛰어들고도 실패한 첫 국제행사 유치전이라는 오점만 남겼다.

가장 큰 패인은 한국측의 ‘잘봐달라’는 주먹구구식 외교전이었다. 과거 88서울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따낼 때 즐겨쓰던 방식 그대로였다.

그러나 중국은 개발도상국과 유럽을 철저히 분리 공략했다. 개발도상국에는 중국 정부가 1억달러의 펀드를 마련, 참가비용 할인과 행사보조금 지급에 보탰다. 상해의 기업전시관을 나중에 해당국가의 ‘문화센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유럽에 대해서는 ‘엑스포 마피아’라는 박람회 전문가들을 활용했다. 도시공학에 초점을 맞춘 슬로건 ‘Better City, Better Life’도 상하이와 유럽전문가들의 공동작품이었다. 김도훈(金道薰)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은 “유럽 전문가들의 참여로 유럽표가 막판에 러시아에서 상하이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베이징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지원을 부탁한 것도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최종 4차투표에서 러시아 지지표 12표 중 11표가 중국으로 간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번 투표는 국가훈령에 따라 결정되는 성격상 국가원수의 의사가 곧바로 표로 연결됐다. 하지만 우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건강 문제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정상외교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주무부처를 힘없는 해양수산부에 맡긴 것도 큰 패인이었다. 또 전 해양수산부 장관 정우택(鄭宇澤) 자민련 의원은 “타 부처들이 박람회 유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DJ 정부의 레임덕으로 해양수산부와 전남도만 뛰었고, 다른 부처들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정부 전체가 움직였던 중국과 대조적이었다. 한 고위 공무원은 “공직자들이 박람회 유치명목으로 출장을 갔지만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실토했다.

지난 10월 이미 승부가 상하이로 기운 상황에서 정부가 재계 전체에 전면적인 SOS 지원을 요청한 것도 때늦은 일이었다.

상하이는 국제적인 도시라는 점을 앞세워 도이체방크 등 35개 선진국 기업대표의 상하이 지지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수는 지명도와 인프라에서 매우 열세였다.

세계박람회기구(BIE)의 유치 실사단이 지난 3월 여수를 방문했을 때 이들이 체류할 수 있는 특급호텔조차 없었다고 한다. 실사단은 전체 5일의 실사기간 중 1박2일만 여수에 머물렀고, 나머지 기간은 서울과 제주에 체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에 따른 ‘수의계약’ 으로 여수를 박람회 장소로 선정하기보다는, 공개경쟁에 의해 인천이나 부산을 선정한 뒤 유치경쟁에 나섰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