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2세기는 송자(宋瓷)와 완연히 차별화된 상감청자를 빚어 냈다.
15세기는 한글을 만들어 냈다. 18세기에 축성된 수원의 화성(華城)은
만리장성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대략 300년
터울로 우리 문화에 중흥기가 있었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
정조(正祖·재위1776~1800)를 주목해본다.
정조가 24년간이나 왕위에 있으리라고 당시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적 입지가 약했던 그에게 자객은 수도 없이 찾아 들었고,
역모도 수차례나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굴능신(能屈能伸)하면서
정조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유신적인 문치(文治)를 펴면서 숱한 업적을
남겼다. 와중에 10만권이 넘는 서책을 사 모으고, 자신의 강론과 저술을
홍재전서 100권으로 생전에 정리하기도 했다.
정조의 효심은 문화적으로 엄청난 기여를 했다. 억울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소를 수원으로 옮기고, 능행(陵行)을 빌미로 화성을
쌓았다. 젊은 실학자 정약용을 발탁하여 설계는 물론 거중기와 같은
신장비를 만들게 하고 철저히 기록을 남겨 작지만 위대한 성을 만들었다.
특히 정조는 축성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힘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군주가 이렇게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까.
3세기 전 정조가 던진 한마디가 새삼 귓가를 맴돈다. 아름다운 것이
힘이다라는 말 속에 21세기 우리 문화중흥의 중요한 지향점이 있다고
본다. 생명력있는 문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에 다시 300년이 가도
명언으로 남을 것이다.
(김종민·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