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폭로한 국정원의 도청(盜聽) 사례는 국가기관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감시해온 생생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 그동안 짐작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이 나라가 전화 한 통화 마음놓고 할 수 없는 '도청
공화국'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관계 당국은 그동안 불법 도청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펄쩍 뛰었다. 관련 시설을 공개할 용의가 있다며 현장 조사를
자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이동전화의 도청 사례도 분명히 확인됐다고 한나라당은 주장했다.
국정원은 이번에도 불법 도청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번에 폭로된 도청 사례들은 여야 정치인들의 대화는 물론 일선
기자들의 취재활동까지 세세하게 포함돼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이는
명백한 언론에 대한 감시이자 사찰이다. 실제로 도청이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민주화와 인권
보장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워온 현 정권에서 이같은 마구잡이 불법
도청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더욱 할 말을 잃게 한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도청의 구체적 사례 공개를 미루어 오다 굳이
대선(大選)이 시작된 직후에 이를 폭로한 데 대해서는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이 같은 비난을 줄이려면 한나라당은
도청문제를 선거이슈로 삼아 질질 끌려고 할 것이 아니라 폭로 자료의
신빙성을 보장할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미공개 자료가
있다면 즉각 모두 공개해 조속히 진실을 규명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불법 도청문제는 선거의 쟁점이 되느냐 마느냐를 떠나 국민생활과 직결된
것이다. 아무리 대선기간이라 할지라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제도적 방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는 결코 어느
정파(政派)의 유·불리를 따지고 있을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