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은 내 추억의 저 깊은 갈피 속에 잠들어 있다. 굽이지고 굽이진
산길, 산토끼 다람쥐들이 오고가는 오솔길을 따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할머니 손잡고 올라가던 내 저 먼 추억 속의 옛 절. 할머니는 내게
자꾸만 부처님을 향해 절을 시키고, 나는 향내 자욱한 법당이 어쩐지
무서워져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절을 시키고
놓아주지 않으셨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밤도 따도 대추도 따고 그럴 즈음,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르시곤 했다. 햅쌀은 부처님께 먼저 공양을
올려야 한다. 밤도 대추도 그렇다. 준비하거라. 내 곧 이놈을 데리고
절로 올라갈까 한다. 할머니는 내 깍은 머리를 어루만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 정답던 우리 할머니는 이제 이승에 계시지 않는다. 잡초 우거지고
우거진 조그만 산등성이,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동그만 무덤 속에 홀로
잠들어 계신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나무 껍데기 같은 꺼칠한 손으로 내
깍은 머리를 쓰다듬던 할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그때처럼 따스하게 전해져
온다.
천년의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추억 속의 옛 절.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는, 이 스산한 옛 절의 밤 뜨락을 지금 나는 거닐고 있다.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어린 손주의 손을 꼭 잡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게
하시던 우리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깊은 밤 옛 절의 뜨락을 혼자 거니는
이 손주의 알 수 없는 외로움을 알고 계실까.
깊은 밤, 옛 절의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아득해진다. 바람소리, 발 아래
쓸려다니는 무수한 낙엽들….
(지현 스님·봉화 청량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