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 수행자 밧차곳타가 석가에게 자아(ego)의 존재 유무에 관해
질문했다. 자신의 물음에 석가가 시종 침묵하자, 밧차곳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석가의 제자 아난다가 침묵의 이유를 묻자 석가는
"자아가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그것은 모두 진실과는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말했다. 석가에게 침묵이란 '있음'과
'없음'이라는 양 극단이 포용하지 못하는 '제3의 경계'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아'의 존재 유무와 같은 거창한 철학적
테제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순수 긍정이나 부정을 통해서는 답변할
수 없는 문제들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최근 사회 일각에서 논의되어온
진보와 보수의 색깔 논쟁이라든가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 등이
그러할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우리는 늘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고, 결정에 대한 유보는
기회주의적인 우유부단함으로 비난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모순이 허위의 표시가 아닌 것은 모순이 없는 것이
진리의 표시가 못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했던 파스칼의 지적을
되새겨 볼 만하다. 자칫 우리는 언어의 투박한 논리에 말려 너무 쉽사리
인간을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무 것도
언술(言述)하지 않는 그 무(無)의 침묵 속에 비로소 존재가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면 이는 지나친 문학적 상상일까.
(정진배·연세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