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회원들 한 사람당 100포기꼴로 담갔어요. 수해(水害)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6일 오후 용인시 김량장동 농협 파더스마켓 주차장. 김장김치
2700포기를 가득 실은 2.5t 트럭 2대와 버스가 앞치마를 두른 주부들의
배웅을 받으며 막 시동을 걸고 있었다. 행선지는 지난 여름 수해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은 충북 영동, 강원도 삼척, 경북 김천과 경남
김해 등이었다. 용인시 동부동 부녀회원들이 닷새 동안 정성껏 담근
김치들이다.

동부동 부녀회원들이 수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한 것은 지난 9월. "그곳
분들의 고생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집도 복구가 안 돼 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버너로 라면을
끓여 드시면서 어렵게 살고 계셨어요. 이번 겨울은 어떻게 나실지…."
동부동은 새로 지은 아파트와 논밭이 함께 있는 도농(都農) 복합지역.
농사일이 낯설지 않은 이곳 아주머니들은 겨울철 농촌이 겪게 될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김장철을 앞두고 최순주(崔順珠·51) 부녀회장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부녀회에선 매년 김장김치를 담가 용인농협에 '동부동 부녀회
김치코너'를 마련할 정도로 김치 담그는 솜씨가 뛰어나다. 남은 김치는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써 왔었다. "올해는 그 김치를 수해지역 주민들에게
드리자"고 한 것. 회원들은 흔쾌히 찬성했고, '위문김치 만들기
특별작전'에 들어갔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명의 회원들이 닷새 전부터 새벽 6시부터 농협에
나와 김치를 담갔다.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는 쌀쌀한 초겨울 날씨
속에서 회원들의 손등은 텄고, 손가락에는 물집이 생겼다. "감기가
걸리고, 코가 다 헐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고 계실
수해지역 분들을 생각하고 힘을 내서 일했죠." 장진숙(張眞淑·43)
부녀회 총무는 저녁 8시까지 김치를 담그면서도 불평하는 회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회원 가운데 자녀가 수능시험을 치르는
학부모도 8명이나 있었지만,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애들도 시험을 잘 볼 것"이라는 생각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도 열심히 '작업'에 몰두한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오해도 샀다.
"장보러 온 주부들이 '이거 얼마에 파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하지만 수해지역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놀라면서
'우리도 뭐 도울 일이 없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김치를 전달하기 위해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예전리와 용산면 산저리까지
따라간 최순주 부녀회장은 "우리를 붙들고 우시는 주민들도 있었다"며
"아직 마을로 가는 길이 복구가 안 돼 회원들이 직접 김치를 들고 4㎞를
걸어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옷가지 같은 다른 위문품을 가지고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녀회원 정숙자(鄭淑子·52)씨는
"우리가 만든 김치를 드시고 꼭 다시 기운을 차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