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성산산성(사적 67호)에서 서기 6세기 중·후반기의 신라 관직명과 지명, 인명 등을 적은 목간(木簡) 65점이 발굴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목간은 약 250여점 정도. 함안 성산산성은 단일 유적으로는 국내 최대 목간 출토지로 떠올랐다. 이 곳에서는 지난 92년과 94년에도 목간 28점이 발굴된 바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목간은 글이나 편지를 적은 나무조각을 말한다. 종이가 보급되기 전 문자 상황을 전해주기 때문에 문헌 자료를 보완할 제3의 사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수십만점이 출토돼 목간학(木簡學)이라고 불리는 학문분야가 성립돼 있을 정도지만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한 점 발견되지 않다가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발굴된 목간에는 “어디에 사는 누가 물품을 보낸다”는 ‘물품 꼬리표’가 많은 데 이번에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목간도 대부분 ‘물품 꼬리표’에 해당한다. 성산산성은 가야세력이 애초 쌓았지만, 신라가 서기 6세기 중엽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자리했던 아라(=안라)가야를 멸망시킨 뒤 고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을 맡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김성범 학예연구실장은 “어디 촌(성)에 사는 누가 성곽의 수축을 위해 곡물인 피(稗)를 보냈다는 것을 기록한 목간이 많다”고 밝혔다.
목간에 적힌 글은 모두 한자로 썼다. 사람 이름으로는 거리지(居利支) 기혜지(己兮支) 등이, 지명으로는 구리벌(仇利伐) 양촌(楊村) 진성(陳城) 등이, 관직은 일벌(一伐) 일척(一尺) 등이 적혀 있다. 이중 일벌과 일척은 경주 이외 지역의 지방 관등(외위·外位)으로, 각각 외위 8등급과 9등급에 해당한다. 6세기 중엽 무렵, 신라의 외위 8~9등급은 지역 수장(首長)급에 해당한다.
이번에 출토된 목간들은 지난 92년과 94년 함안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형식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용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목간에 적힌 지역들을 보면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서 피를 보냈다는 기록이 많다”며 “이는 6세기 중엽,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키고 낙동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금년도 발굴에서는 이밖에도 목간 글씨를 지우는 지우개 역할을 했던 철제 칼 등 유물 200여점이 출토됐으며, 성 내부에는 돌을 쌓아 만든 대규모 저수지도 발굴됐다.
(愼亨浚기자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