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아독존 ’에서 보스 자리를 남에게 빼앗기자 부하들과 ‘거사 ’를 일으키는 마동철 역으로 출연한 이재용.


영화 '친구'의 진짜 주인공은 '부산'이다. 바닷바람과 담배 연기로
성대가 칼칼해

진 '부산 사내들'이 한껏 깔아내린 목소리로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남성 관객들은 가슴 어딘가에 묻어버렸던 '남성'이 깨어나는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그 중에서도 섬뜩했던 목소리 하나. 유오성의 관자놀이에
칼끝을 그어 내리며 "너,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며 협박하던
건달 두목을 기억하는가? 그가 바로 이재용이다.

세상은 '물건'을 알아보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히트작 TV드라마
'피아노'에서도 이재용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강렬함은 지금
장안의 화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사사건건 김두한을 못잡아 먹어
안달하는 일본 형사 '미와'역을 통해 다시 우리 눈길을 붙든다.

나이 사십에 절반이 연기 인생인 이 남자는 대학 입학으로 부산과 인연을
맺었고 부산에서 연극을 했다. 부산 시립 극단 시절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예수역을 했다. 나이가 어리고 고함을 잘 질러
얼렁뚱땅 떠맡았을 뿐이라는 게 본인의 진술이지만 그런 이유로 맡겨질
역이 아니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 왜
하필 나여야 하냐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운명을 피해가게 해달라며
'야훼'를 향해 절규하는 내용의 '겟세마네'는 어지간히 노래를
한다는 사람도 손사래를 치는 난이도가 높은 노래다. 어쩌면 그것은
이재용이 힘겹게 연극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을 질문일지
모른다. 왜 나는 연기를 시작했을까, 다른 길은 정말 없었을까.

이재용을 영화 쪽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곽경택 감독이다. 이재용은
곽감독이 항상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에 신뢰를 던졌고 그런
인연으로 곽감독과 세 편의 영화를 했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억수탕'에서 정통 만화 운운하며 개똥 철학을 설파하던 만화 가게
주인, 이재용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 이후에도
이재용은 영화에서 '오야붕'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다. 냉혈하고 어느 정도 두뇌 회전이 되는, 그리고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는 철저한 악당이라면 이재용이 딱이다.

그러나 코미디 영화가 유행이어서인지 이재용에게 '웃기는 보스'역이
맡겨지기도 한다. 그러다 잘못하면 오발탄이 터지고 영화와 배우가 함께
다칠 수 있다. 최근 '뚫어야 산다'와 '유아독존'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희화적으로 그려진 건달 보스 이재용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해부학적 지식까지 연기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그의
안목과, 재충전을 위한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만 말이다.

(남정욱· 월간 베스트셀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