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해 …그 이름을 찾아서 ’특별전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좌담 참석자들.왼쪽부터 이기석 서울대 교수,천영우 외교부 국제기구정책관,김신 경희대 교수,이영덕 본사 논설위원.<br><a href=mailto:wjjoo@chosun.com>/주완중기자 <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조선일보·경희대·
한국언론재단·전쟁기념관 공동주최로 '아! 동해… 그 이름을 찾아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우리 바다 이름 '동해'를 되찾는 일에 국민적 관심과 열정을 모으기
위해 마련된 동해전은 성황리에 12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회의
의의는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기석(李琦錫·62·
동해연구회 부회장)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김신(金新·53) 경희대
교수, 천영우(千英宇·50)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이영덕(李永德·
57) 본사 논설위원이 대담을 나눴다.


▲李永德 =정부·민간 차원에서 지난 10년간 동해 명칭 되찾기 운동을
벌여온 결과, 국제적으로 일본해 단독표기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을
어느 정도 확산시켰다. 하지만 지난 9월 국제수로기구(IHO) 신임
이사진이 백지(白紙)로 비워두기로 한 4차 개정안의 투표를 철회함으로써
사태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IHO가 지난 9월 갑작스레 찬반 투표를 철회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千英宇 =일본이 IHO 사무국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또 회원국을 상대로
투표철회 교섭을 한 것이 작용한 것 같다. 또 우리가 회원국들과 교섭을
벌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IHO 회원국은 대부분 한·일 두 나라와
우방이다. 어느 한 쪽을 편들기 어려우니까 사무국에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는 기권할 수밖에 없다"고 항의했다. 투표에 들어가서 부결되면
신뢰성에 타격을 받고, IHO 자체의 존립이 우려되니까 중단해버린 것
같다는 게 사무국의 해명이다.

▲李琦錫 =IHO가 동해 문제에 관한 책임을 방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IHO는 기술적 문제를 다루는 기구라고 주장하는데, 국제기구에서 나라
간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적 문제가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월에
IHO를 항의방문했을 때, "정치적 문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1974년 두 나라 간에 명칭 합의가 되지 않으면
병기하기로 정한 IHO 기술 결의가 있지 않느냐. 당신들은 왜 책임을
다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金新 =이번 일을 실패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IHO가 50년간 준비해서
내놓은 안인데, 기술적 결함이 거의 없다. IHO가 투표에 회부했던
안(案)에 일본해란 표현이 사라진 것은 사실 아닌가. 투표가 됐든 안됐든
IHO가 그런 안을 낸 것은 의미가 있다. IHO 73개 회원국 전부가 동해
문제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선 처음엔 별로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일본해가 지도에서 사라진다며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여론을 일으켰다.

▲李永德 =일본 외무성은 이 문제가 이슈화되니까 총력을 다해서
대처하겠다고 결의했고, 이런 노력으로 결국 IHO 투표가 철회됐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의 노력에 의해 국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7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8차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에선 참가자 전원이 "한·일 양국간 협의가 안될 경우
병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결의안까지 나왔다.

▲李琦錫 =일본 정부와 언론이 배포한 자료에는 일본해 표기가 식민지
시기인 1929년에 결정됐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 동해 표기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막연하게 그전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됐다고
주장한다.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두 나라 간에 협력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사실 두 나라에서 함께 쓰는 월드컵 공식지도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었다. 동해 표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지도엔 동해,
일본 지도엔 일본해라고 표기된 지도가 사용됐다.

▲千英宇 =유엔 지명 전문가, 국제 수로 전문가들은 대부분 우리 입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IHO 회의에서 이름을 바꾸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
각국 외교부이다. IHO에는 관련국이 지명 표기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병기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일본은 왜 이를 못 받아들이겠다는지 납득이
안 간다. 한·일 양국 간에 첨예한 외교문제가 되니까 각국 외교부는
남의 일에 괜히 끼어들지 말라는 식이다. 이 문제는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들다.

▲金新 =1953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 3차 개정판이 나온 이후 50여년이
흘렀다. 지금은 상호 협력의 시대다. 유럽의 경우,
독일·프랑스·덴마크·영국이 수백년간 각각 다른 이름을 붙이던 바다에
대해 1929년 북해로 합의했다. 이번 4차 개정안에도 칼레와 도버해협을
병기하고 있는 것처럼 유럽은 상호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태평양은
세계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바다이고, 동해는 중요한 바다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가 공동으로 활용하는 바다에 이름을 정하지 못해 개정판이
못 나오는 것은 문제다.

▲千英宇 =동해연구회가 국제세미나를 8번이나 개최했는데, 여기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이 대부분 유엔 지명(地名)표준화회의에 나온다.
이들은 우리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8월
베를린에서 열린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 왔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본은 현재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서 거론하지 말고, 당사국
간에 협의하자는 쪽으로 얘기를 끌고 간다.

▲李永德 =역사적으로 일천몇백년간 일본은 동해에 대해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힘이 세지니까 일본해를 고집하는 것은
경우에 안 맞다. 일본이 이웃 나라와 동해 명칭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동아시아나 세계의 리더로 발돋움하려고 시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앞으로의 대책은 정부뿐 아니라 국민 참여도 필요하다. 정부도
노력했지만, 너무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 외무성은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는가.

▲李琦錫 =지명 관련 정부 부처가 여러 곳에 분산돼 있는 게 문제다. 정부
차원의 협의체를 만들어 일본과의 외교전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영문판 국가지도를 만들어 세계 도서관과 언론기관에 배포해야
한다. 일본·미국·캐나다 등 대부분 나라가 영문판 지도를 만드는데
우리 정부는 한번도 만든 적이 없다. 외국 교과서들이 전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金新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으로 동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개인적으로 3년 전에 홈페이지(www.eastsea.org)를 만들어 자료를 올리고
있는데, 외국에서 문의 메일이 많이 온다. 'EAST SEA'란 영문 책자를
출판, 세계 각국의 대학도서관에 보냈더니 옥스퍼드나 컬럼비아대에서도
고맙다는 회신을 보냈다. 일단 이들 도서관 서지 목록에 '동해'가
올라가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千英宇 =IHO는 내년 6월까지 4차 개정안 발간 지침을 회원국에
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무리일 것 같다. 관련국과 협의를 거쳐, 2004년
6월까지 최종안을 완성, 회원국에 찬반투표를 요청하겠다는 게 IHO
구상이다. 회원국과 관련 당사국 간에 협의가 순탄하지 않으면 일정이 더
늦어진다. 최종안에는 동해·일본해 병기안이 관철되도록 노력하겠다.

◆지정학적 東海/ 100년전부터 열강각축…21세기 新실크로드

100년 전 동해는 열강들의 '무력 각축장'이었다.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세력을 확장했고, 일본은 러시아의 무력 팽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양국의 긴장은 결국 1904년 러일전쟁으로 폭발했고,
여기에서 이긴 일본은 동해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2002년, 동해는 열강들의 '경제 각축장'으로 변했다. 소련 붕괴 이후
'태평양 국가'를 선언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의 무역 및
산업 전진기지로 삼았고, 베이징 조약(1860년)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겼던 중국도 최근 두만강을 통한 동해 뱃길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동해가 동북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나진·선봉에
자유 무역지역을 설정한 것도 동해의 이런 경제적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동해는 한국·일본·러시아·중국 등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교합(交合)하는 바다다. 일본은 자본과
기술에서, 러시아는 자원에서, 중국은 노동력과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대륙국가인 중국·러시아와 해양국가인
일본을 연결하며 주변국들의 경제적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일제 때처럼 자칫 어느 한 나라에 속박된다면
기술·노동력의 공급처나 소비재 시장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21세기에 동해는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적 흥망에 영향을 미칠
신(新)실크로드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그 이름을 올바로 부르도록
만드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