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홈런 한두 번 쳐 본 이승엽(26)이던가. 1995년 데뷔 이후 이번 시즌까지 홈런왕 네 번에,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54개) 기록까지 갖고 있는 ‘국민타자’ 이승엽. 그가 홈런 하나에 눈물을 흘렸다.

6―9로 뒤진 9회말 1사 1·2루. 이승엽은 앞 타석까지 4타수 무안타였다. 시리즈 전체를 따지면 20타수 2안타. 딱 1할 타율이었다. 정규시즌이 끝나고 무릎이 좋지 않았던 데다 추운 날씨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못해 쓸데없이 힘이 들어간 탓. 시즌 타격 4관왕의 자존심을 접고, 한국시리즈 기간 중 이례적으로 숙소에서까지 타격연습을 하며 부진 탈출에 안간힘을 썼다.

“최소한 병살타는 치지 말자”고 생각한 이승엽은 직구 대신 변화구를 노렸다. LG 이상훈의 두 번째 슬라이더가 가운데서 아래로 떨어져 들어왔다. 힘차게 스윙. 이승엽은 타구가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걸 확인하자 껑충껑충 뛰며 주먹을 내질렀다. 50호 홈런을 쳤을 때보다 더 짜릿한 한 방이었다. “이젠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절로 감정이 북받쳤다.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뒤 이승엽은 응원 나온 아버지 이춘광(58)씨에게 그라운드에서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올 초 뇌종양 판정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하며 투병 중인 어머니(김미자·52)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버지 이씨도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이승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분 좋다”며 “내가 삼성에 있는 동안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편안히 야구할 수 있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메이저리그 진출도 팀 우승 이후로 미뤄온 이승엽은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당장 외국에 나가면 불안할 것 같다”면서 “미국행은 아버지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성진혁기자 jhs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