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프로 원년인 8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시리즈에 7번 도전해서 모조리 패했다. 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위안 삼았지만 SK(전신 쌍방울 포함)만 빼고 모두 받아본 우승컵을 번번이 놓쳤다.

초조함은 짝사랑과 공포를 동시에 낳았다. '한국시리즈 공포'에 걸린 삼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초대 서영무 감독을 시작으로 김용희 감독까지 무려 11명의 감독(감독대행 포함)이 '조급증'에 희생됐다. 포스트시즌의 결과 때문에 번번히 경질됐다. 정규시즌 4위 이내에 든 게 무려 17시즌인 점을 감안하면 사령탑의 운명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투자에 있어선 최고였지만 우승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내버렸다. 프랜차이즈 간판 스타의 트레이드는 대부분 삼성의 작품.

88년 11월에는 김시진을 롯데 최동원과 맞트레이드했다. 오대석과 허규옥 등도 함께 달구벌을 떠났다.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장효조는 눈물을 흘리며 롯데 김용철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97년 해태에 현금 4억원을 주고 조계현을 데려온 걸 시작으로 '선수 잡기'는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98년 12월 양준혁과 해태 임창용을 맞바꿨다. 며칠 뒤에는 운영 자금이 바닥난 쌍방울에 선수 2명과 현금 20억원을 선물한 뒤 김기태 김현욱을 영입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0년말 해태 김응용 감독을 총액 13억원에 '우승 청부업자'로 모셔왔다. 삼성 프런트는 팀컬러인 파란색 '순혈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서야 비로소 꿈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