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기업 임금구조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보쿰대에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안티에 쿠르델부쉬(여·30)씨는 다음달부터 다임러-크라이슬러 슈투트가르트 본사에서 노사관계 컨설턴트로 일하게 됐다. 지난 3년반 동안 막스 플랑크 사회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the Study of Societies) 연구원으로 세계화와 임금 체계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멘스 등 독일 100대 기업의 임금체계를 분석한 결과, 세계화된 기업일수록 임금 체계가 다원화돼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상품을 해외에 많이 내다파는 기업일수록, 성과급이나 실적급 등 임금 체계가 다양하고 유연했어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독일 쾰른의 막스 플랑크 사회연구소는 세계화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싱크 탱크’다. 1985년 출범한 이 연구소는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를 ‘주력 업종’으로 택했다. 방문 연구원을 합해 연구인력은 40여명. 쾰른 대성당이 있는 구(舊)시가 가장자리의 폴스트라세 3번지 5층짜리 연구소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다.
연구 분야는 세계화와 지역통합의 영향아래 놓인 유럽의 공공정책, 노사관계, 임금체계, 초(超)국가기구…. 현재 20여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피렌체 유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베른하드 에빙하우스(41) 박사는 세계화가 유럽 복지국가의 대표적 정책인 조기퇴직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6년짜리 프로젝트에 매달려있다.
『기업은 경쟁력을 앞세우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대신 기술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있는 젊은 사람들을 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이들을 먹여살려야하는 국가 부담이 커지지요.』 기업이 노령인구를 재교육시켜 계속 고용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유도해야한다는 것. 에빙하우스 박사는 “어떤 지식인들은 세계화를 악의 축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세계화는 진행중”이라며 “각 나라마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다양성을 세심하게 가려내야한다”고 했다. 연구소 창립멤버인 위르겐 파이크(55) 박사의 생각도 비슷하다. 최근 유럽 통합과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약품 규제 연구를 막 끝낸 그는 “세계화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 대상이다. 학자라면 세계화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현실을 탐구해야한다”고 말한다.
연구소의 관심은 유럽을 뛰어넘어 세계로 향한다. 취리히대에서 유럽 통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패트릭 질트너(37) 박사. 작년부터 동아시아의 지역 통합을 연구하고 있다. 질트너 박사는 “서구인들은 IMF 위기 이후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떨어졌다”며 “하지만 유럽, 북미와 함께 세계 경제의 3대축을 차지하는 한·중·일을 빼놓고 세계화를 얘기하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막스 플랑크 사회 연구소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질트너 박사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있는 환경을 손꼽는다. “대학은 강의와 행정 업무 부담도 있고, 예산도 연구 위주로 배정되기 어렵습니다.” 위르겐 파이크 박사는 쾰른대 조교수로 있다가 창립자인 레나테 마인츠 소장의 권유로 연구소 창립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에서 교수로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도전 기회를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연구소의 실용적 자세는 독자적으로 학술지를 출간하지 않는 것에서도 엿볼 수있다. “여러 곳에서 비슷한 저널이 많이 나오는데, 하나를 더할 필요가 있나요. 저널을 편집하는데 드는 노력 대신, 연구에 집중하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총서와 디스커션 페이퍼, 워킹 페이퍼 등 3가지 형태로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국제적 비교 연구를 중시한다.피렌체의 로버트 슈만센터, 오슬로의 유럽통합 연구소 등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시로 진행한다.
연구소 재원은 전국의 80개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관할하는 막스 플랑크 협회에서 나온다. 협회 예산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예산이 95%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연구의 독립성은 보장돼있다. 국가가 연구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방식을 일찍부터 택했다. 대신 평가는 엄격하다. 2년마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연구 결과를 평가한다. 소장이 정년 퇴임(65세)할 때마다, 연구소자체가 존폐의 시험대에 오른다. 막스 플랑크 협회는 시대변화에 따라 새로운 학문 연구를 위한 연구소를 계속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다른 연구기관에서 해낼 수없고, 긴요한 각 분야 기초 학문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는 복수 소장 체제로 운영된다. 현재 소장은 볼프강 스트릭과 프리츠 샤프 박사 등 2명. 스트릭 소장은 슈뢰더 정부의 사회복지분야 고문이었고, 샤프 소장은 유력 일간지 ‘디 자이트’의 고정 필자로 논쟁을 이끌어온 지식인이다. 각각 사회학과 정치학을 담당하는 두 사람은 2년씩 교대로 운영 총책임을 맡고, 연구 프로젝트와 인사 관리를 분담한다.
연구소 재원은 정부에서 나오지만, 연구 주제와 방향은 전적으로 소장과 연구원들에게 맡겨져있다. 한번 소장에 취임하면, 정년까지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연구소 운영은 전적으로 소장 책임아래 이뤄진다.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는 얼마전 쾰른 지역내 대학 총장, 언론인, 기업인, 지역사회 대표 등 8명으로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홍보담당 크리스텔 숌메르츠 씨는 “연구소 활동이 대중과 유리되지 않고,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있도록 자극을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폴 크루첸(1995년·화학),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1995년·의학), 베르트 자크만·에르빈 네허(1991년·의학), 하르트무트 미첼(1988년·화학) 에른스트 루스카(1986년·물리학)….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1954년 이래 노벨상 수상자만 15명이다.
이 연구소는 원래 인문·사회과학보다 자연과학이 유명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모델로 삼고 있는 연구소가 바로 막스 플랑크 연구소다. 세계적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도 70년대 학생운동 여파로 대학에서 쫓겨난 후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독일의 독특한 국가 관리 연구 체제를 보여준다. 뮌헨에 본부를 둔 막스 플랑크 협회가 베를린, 본, 도르트문트, 뮌헨, 함부르크 등 독일 전역에 연구소 80개를 관할한다. 중복투자를 피하고 효율적 연구활동을 이끌어가기위해 연구소마다 전문 분야를 특화했다.
전국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는 3200명의 과학자와 연구원을 포함, 1만1600명이 일하고 있다. 2002년 예산만 12억5천260만 유로(약 1조5천억원). 말 그대로 국가 연구의 중추를 담당하는 연구소다. 막스플랑크 협회는 산하 연구소 동향을 소개하는 영문 잡지 ‘막스 플랑크 리서치’를 펴내고 있다.
막스 플랑크 협회 관련 최고 결정은 연방 상원에서 이뤄진다. 이사회는 사회 각계 대표 인사로 구성한다. 역사는 괴팅겐, 법학은 뮌헨에 연구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