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중국산 마늘 수입이 자유화돼 전국의 마늘 농가들이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육쪽마늘'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농민들은
여전히 부농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물론 국내산에 비해 가격이 10분의 1
수준인 중국 마늘이 마구 들어올 경우 이들이라고 타격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태안 육쪽마늘 재배 농민들은 언젠가는 마늘 수입자유화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고 착실하게 대비해왔기에 어려움을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올해 생산한 마늘은 모두 팔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판매를
중단하니까 알음알음으로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마늘을 보내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있어야 말이지요. 이제 전화받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태안육쪽마늘동호회」최문우(65·태안군 근흥면 수룡리) 회장이
지난달 21일 오전 태안농업기술센터에서 농민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올
농사에 대해 보고하면서 이같이 말하자 박수와 함께 환성이 터져나왔다.
이 자리는 10월 말~11월 초 파종기를 맞아 올 농사에 대한 결산과 함께
내년도 영농계획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잠시 박수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린 최 회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마늘 수입 자유화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품질이 가장
중요합니다. 맛좋은 마늘을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값은 비싸도 역시
태안 육쪽마늘이 최고」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이어 각 작목반장들은 각자 자신의 사례를 발표했다. 동호회 감사
이석용(64·원북면 마산리)씨는 풀과 톱밥, 쇠똥, 깻묵, 왕겨 등을 섞어
지렁이가 사는 자신만의 퇴비 제조 비법(秘法)을 공개했다.
태안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성기설(33) 담당은 『제 값을 유지하기
위해선 밭떼기 거래를 지양해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파종 후 겨울나기
등 간단한 영농교육을 실시했다.
태안 농민들이 중국산 마늘 수입 자유화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홍보 판촉의 성공으로 좋은 값을 받고 팔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 농민들은 올해 생산한 마늘을 지난 8월쯤 일찌감치
다 팔아치웠다. 그 이후에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다. 동호회 소속
농가는 올해 육쪽마늘 1200여t을 생산해 상인 판매, 인터넷 및 전화
주문, 마늘강장제 제조업체 납품 등을 통해 60억원의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물론 이 같은 성과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최 회장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마늘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동호회가
조직된 것은 1998년 말. 평생을 마늘과 함께 살아온 최 회장은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이후 『가만히 있으면 마늘농사는 망한다』고 생각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육쪽마늘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태안의
특화작목으로 발전시켜보자』며 47명으로 동호회를 출범시켰다. 이어
주변 농민들에게 동호회 가입과 육쪽마늘 재배를 권했다.
그 결과 동호회는 이제 24개 작목반에 430여명으로 성장했다. 육쪽마늘
재배면적도 태안 전체 마늘 재배면적 1266㏊ 중 413㏊로 1998년에 비해
약 2배로 늘었다. 태안군청과 농업기술센터도 농민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우량 종구(種球)를 보급하는 한편,
생산비 절감을 위해 수확기와 쪽분리기, 선별기, 파종기 등 기계화를
적극 지원했다. 또 지난 6월엔 마늘을 공동 보관할 수 있는 17평짜리
저온창고를 건립했다. 가기승(55) 군청 농림과장은 『대도시와 직거래를
추진하는 등 육쪽마늘이 태안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되도록 앞으로도 적극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한지형 마늘인 육쪽마늘이 난지형에 비해 2배 이상 값을 더
받는 것도 농민들과 행정기관의 「부가가치 높이기」를 위한 합동작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한지형과 난지형 가격은
비슷했다. 동호회와 태안군은 육쪽마늘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충남대에 성분분석을 의뢰해 알리인과 비타민이 더 많다고 나오자, 이를
유인물과 인터넷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태안군은 지난해에는
산뜻한 디자인을 한 고급 마늘 포장재를 개발해 보급했다.
국립종자관리소에 「태안종」이란 이름의 품종등록도 마쳤다. 동호회는
「갯바람아래 마늘이야기」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어 상표등록을 한 뒤
지난해 10월 홈페이지(www.getbaram.pe.kr)를 개설했다. 이곳과
충남농업기술원 사이버장터(www.cnfarmmart.com) 등 2곳을 통해 인터넷
판매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마늘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태안 농민들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내년부터는
서울 등 대도시 아파트단지를 순회하며 육쪽마늘 시식회를 여는 등
주부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다. 소원면 영전리
작목반장 박상준(朴商俊·50)씨는『도시 주민들이 육쪽마늘의 맛을 아예
잊었다』며 『마늘고추장 등 가공식품 개발, 유황을 이용한 재배,
친환경농법 등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송기(金松基·33) 소원면 시목리 작목반장은 『대도시의 고급 소비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벌여 판로를 조금만 더 확보한다면 앞으로의
전망 역시 밝다』고 자신했다.
◆태안 육쪽마늘은/ 향 강하고 맛 부드러워
마늘은 크게 난지형(暖地形)과 한지형(寒地形)으로 나뉜다. 난지형은
중국산 마늘 거의 전량과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재배되는
마늘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수확량이 많아 값이 싸며 쪽이 큰 것이
장점이다. 한통에 쪽수가 6쪽이라 육쪽마늘로 불리는 한지형은 단단하고
저장성이 강하다. 난지형은 톡 쏘는 매운 맛에 뒤가 아리지만 한지형은
향이 강하면서도 맛은 부드럽다. 그래서 한지형이 『김치나 된장 등 모든
요리에서 더 좋은 맛을 낸다』는 게 근흥면 안기리 작목반장
박인근(朴仁根·50)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지형은 재배 환경 및 기술이 까다로운 데다 수확량도 적어 점차
난지형으로 대체돼 왔다. 현재는 태안과 충남 서산, 경북 의성, 충북
단양 등지에서 일부 재배되고 있다.
항암, 항균, 강장 등 마늘의 효능은 여러 연구에 의해 이미 입증된 상태.
하지만 마늘 종류에 따라 성분이나 효능은 약간 다르다. 1998년 충남대
농업과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육쪽마늘은 난지형에 비해 주성분인
알리인(Alliin)과 비타민 함량 이 더 많다. 또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이 지난해 분석한 결과 위암, 대장암, 간암 등의
암세포 성장억제 효과 면에서도 한지형이 난지형 및 수입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늘동호회 최문우 회장 “수입자유화 극복 자신”
"중국산 마늘이 자유롭게 들어오면 당분간 육쪽마늘도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농민들은 이에 대비해 경쟁력 높이기와 차별화에
많은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태안 육쪽마늘동호회 최문우(65) 회장은 "수입자유화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해낼 자신이 있다"며 "두려움은 없다"고 단언했다.
최 회장은 그러나 "마늘 협상과 관련한 정부의 잘못은 크다"고
지적하고 "가능한 한 많은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에서 '마늘박사'로 통하는 최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세 때부터 마늘 외곬인생을 살아왔다. 수확한 마늘이 썩어가는 이듬해
4월 값이 가장 오른다는 점에 주목하고 마늘을 잘 보관하는 집을
찾아다니며 어디에 어떤 위치에 매달아뒀는가를 조사했다. 또 파종
시기와 종구, 시비(施肥) 등을 연구하며 농사를 지은 결과 상당한 소득을
올려 1970년 새마을훈장 노력장을 받기도 했다. '갯바람 아래
마늘이야기'란 태안 육쪽마늘 브랜드는 그가 마늘 2접을 내걸고 공모해
정한 것이다.
최 회장은 "많은 소비자의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