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주로 사회 이슈를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변영주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 ‘밀애 ’.평범한 삶을 벗어나 불륜의 사랑에 매혹되어 가는 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여성문제를 천착해온 다큐멘터리 감독은 남녀의 불륜 영화를 어떻게
찍어냈을까.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낮은 목소리' 등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알려졌던 변영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밀애'(8일
개봉)는 찍기 시작할 때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사회성·역사성 짙은 소재를 화면에 담아온 변감독으로선
불륜영화 연출은 파격적인 변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밀애'는 원작 소설(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과
마찬가지로 불륜이란 누구의 기준에서 규정한 것인가, 가정이란 과연
무조건 사수해야 할 절대가치인가를 넌지시 묻고 있어 여성 문제에 대한
감독의 집요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은 유부남과 유부녀다. 30대에 막 접어든
미흔(김윤진)은 딸 하나를 둔 전형적인 전업 주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편(계성용)을 '오빠'라 부르는 처녀가 집으로 찾아와 남편과의
관계를 폭로하면서 모든 환상이 깨진다. "내가 오빨 통째로
빨아당긴대"라며 아내의 자리를 내놓으라는 처녀의 막무가내 폭력에
머리를 다친다.

6개월 뒤, 가족은 남해의 한적한 마을에 정착한다. 미흔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걸어다니는 시체처럼 아무런 생의
의욕이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윗집에 살고 있는 유부남 인규(이종원)를
알게 된다. 의사인 인규는 환자로서 찾아온 미흔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4개월 간 데이트를 즐기고 가끔 섹스도 하지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는 게임"이다.

뭐라 딱히 이름붙일 수 없는 이끌림에 미흔은 인규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한밤중 창문을 뛰어 넘어 윗집을 찾거나, 벌건 대낮 대밭에서
정사를 벌이는 등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욕망에 끝없이 몸을
맡긴다.

영화는 미흔이 물속에서 유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함으로써 주제를
암시하고자 했다. 종교 의식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은 새로운 출발 내지
재생을 의미하므로. 또 미흔과 인규의 첫 정사 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생물학적 여성으로서의 성적 희열의 발견 뿐만 아니라,
혼외정사를 금지하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까지 표현하고자 한
듯하다.

성폭행·가출·남편의 폭력 등 여성의 일그러진 삶을 한몸에 갖고 있는
동네 휴게소 여자와 미흔의 교감 부분도 미흔의 행보를 육체적
탐닉으로만 치부하지 않게 하는 장치다.

그러나 영화의 이런 의도에 관객들이 얼마나 공감할 지는 미지수다.
원작에 충실한 건 좋으나 사태의 추이를 따라가는 단선적인 화면 진행은,
지문이나 묘사를 통해 설득력과 흥미를 모두 유지할 수 있었던 소설과
달리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캐릭터들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해낸 연기나,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은유하는 소품이나
풍경을 찾기도 쉽지 않다. 가령 외도 사실을 남편에게 들킨 미흔이
게임의 종료를 결심한 인규를 만나고, 인규가 미흔의 머리를 감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같은 대목이 뚜렷한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원작을 따라간, 지극히 통속적인 결말도 아쉬움이다. 그게 이곳의
'현실'이라손 치더라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