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열린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에서 참석자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모금함에 후원금을 넣고 있다.<br><a href=mailto:gibong@chosun.com>/전기병기자 <

올해 대통령선거에선 재벌들의 수십억, 수백억원 후원금이 사라질 것
같다. 투표를 50일 앞둔 지금까지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고 있다.
투표일까지 그렇게 된다면 3김시대 폐막과 함께 정치사에 큰 변화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선자금 수천억원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150억원, 정태수 한보그룹회장 100억원, 최원석
동아그룹회장 100억원…. 재벌 오너들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게
제공한 정치자금 내역이다. 1995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4000억
비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원조·금진호 전
의원을 김 전 대통령의 자금 조달책으로 알선해주기도 했다. 이, 금씨는
재벌들로부터 수십억, 수백억원씩 걷었다.

당시엔 대기업이 여당보다 적은 액수지만 일정액을 '보험금' 명목으로
야당에도 줬다.

▲억대 후원금도 드문 올해 대선

29일 원내 과반 정당으로서, 여론조사 1위의 후보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 중앙당 후원회를 열었다. 한나라당은 선거가 없던 해에도
50억원 정도를 모았는데, 이처럼 좋은 여건 속에서 대선을 코앞에
두었는데도 한나라당의 모금액은 70억원을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억 단위는 거의 없다는 것이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런 한나라당을 부러워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도와줄 형편도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걷는 일에 일절 나서지않고 있다. 이에따라 민주당은 거액 후원금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국민통합21은 다른 재벌 그룹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어서 대기업 후원금을 받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의 다른 형제들도 정 의원의 선거운동과는 선을 그었다.

▲아직 눈치보는 기업들

한 정당으로부터 자금지원을 요청받았던 한 기업인은 "이제 비자금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거액을 냈다고 해서 혜택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영수증 처리가 되는 기부금 외에는
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고위 임원급
회의에서 아직 정치자금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대선이 임박하면 오너를
포함해 핵심관계자들 1~2명이 최종 결심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 “비용 자급자족”지시에 활동계획 백지화도

대선을 앞두고 최근 직능단체 활동계획 초안을 보고했던 한나라당의 한
사무처 요원은 97년 대선에 비해 너무 바뀐 환경에 말문을 잃었다. 그는
며칠에 한번씩 단체별 각종 모임을 주선키로 하는 등 의욕에 찬 대선활동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 재정국은 "후원금을 자체 조달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벌써 40일 이상 새벽부터 밤 늦도록 일을 하고 있는 대선기획단에도 97년
선거와 격려금은커녕 활동비조차 지급되지 않는다. 새벽·심야 출퇴근이
불가피하지만 각각 100만원 남짓한 월급에서 모두 해결해야 한다.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정치자금 마련에 손을 대지 않고 있어 현실적으로
국고보조금·후원금·당비밖에 없다(김영일 사무총장)고 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상 1위 정당이어선지 '온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월급 자체가
많지 않지만 사무처 요원들의 월급을 조금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까지 당사 전기요금도 제대로 못내던 상황과는 많이 달라졌다.

◆민주/ 아침식사 8000원짜리서 3000원짜리로

민주당의 선거자금 금고는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다. "빚만
200억원"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당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재정권한이 당과 선대위로 이원화돼 서로 갈등까지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대위 활동에 들어가는 돈은 현재까지는 본부장급 의원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내고 있다.

최근 '문서 없는' 회의를 하겠다고 본부장급들에게 지급한 노트북
15대 값 3700만원은 정대철(鄭大哲) 위원장이 냈다. 그간의 자체
여론조사 비용은 담당 본부장인 이해찬(李海瓚) 기획본부장이 냈고,
이상수(李相洙) 총무본부장 등은 사무실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각자
내고 있다. 선대위 산하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인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아침 7시에 열리는 일일회의의 아침식사를
8000원짜리 죽에서 3000원짜리 아욱국으로 낮췄다. 돈 문제에 시달리는
일부 당직자들 사이에선 노무현(盧武鉉) 후보에 대한 불만이 터지고
있다.

노 후보 선대위는 이번 선거에 법정 선거비용 356억원(추정)을 포함,
전체 지출규모를 506억~556억원 정도로 잡고, 이중 선거 전후
보전비용(175억원 정도) 및 대선지원금(80억~11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후원금에 의지해 치르겠다고 밝혔다.

(辛貞錄기자 jrshin@chosun.com)

◆통합21/ “식권말고 받은 것 없어”…‘정후보 짠살림’투덜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국민통합21은 최근 전 직원을 9층 대회의실에
모아 전원에게 자원봉사자 위촉장을 수여했다. 총 140명이었다. 정 의원
대선캠프에 근무하는 전원(정 의원 국회비서관 6명 제외)이 이날
공식적으로 자원봉사자가 됐다. 당연히 무급(無給)이다. 정책개발 업무를
하는 A씨는 "합류한 지 두 달 됐는데 식권 말고는 받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 모두가 하루 두 끼분의 구내식당 식권(3500원 상당)만을
지급받고 있다.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한 직원은 "업무상 택시비나 자료구입비도 모두
내 돈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위원장급 인사들 중에는 "내 돈도 이젠
다 떨어졌다"며 정 의원의 짠 살림에 불평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고 지지도가 흔들리는 것과 때를 맞춰 다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비 영수증 처리 방식이 도입됐다. 전 직원이
A·B·C급으로 분류됐고 "이번주에 활동비가 지급될 것"(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이라고 한다. 한 직원은 "최고 100만원 정도 준다고
한다"고 했다. 그 돈은 정 의원 개인 호주머니 아니면 나올 데가 없다.
선관위는 올해 국민통합21이 받을 대선보조금은 총 267억원 중
2000만원(의원이 1명일 경우)이라고 말했다.

(許容範기자 h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