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선(先) 핵무기
포기'(미국)와 '선(先) 불가침 확약'(북한)을 서로에게 요구하면서
강경하게 맞서고 있어, 한반도에 제2의 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북 사이에서 '대화로 해결하자'며 양쪽 모두를
설득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제네바 핵합의 등에 대한 인식과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쉽게 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편집자)


북한은 한·미 양국이 북한 핵개발 파문과 관련, "이는 제네바 합의
위반이니, 이를 포기하면 대화로 미·북간의 현안들을 풀겠다"고 밝힌
지 8일 만의 첫 반응에서 "핵무기를 포기한 상황에선 대화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북한은 미국측의 핵무기 포기 요구를
일축한 것은 물론, '미국이 먼저 불가침을 확약하라'고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부시 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 공격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한 선전포고이며,
(제네바)미·북 기본합의문을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화는 또
미국이 제네바 합의 4개 조항 중 하나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팔짱끼고 가만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느냐"고
했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게 된 것도 "미국의 핵압살 위협에 대처해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미국이
핵을 버리고 협상하자는 것은 "굴복하라는 요구"라면서 "굴복은
죽음이고 죽음을 각오한 자는 당할 자가 없다"고 미국과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의지를 내비쳤다.

북한이 이처럼 강하게 반응하는 것과 관련, 핵무기란 새로운 카드로 부시
미 행정부와, 체제보장과 경제회생을 얻기 위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으로선 과거 93년
핵안전협정 탈퇴 카드로 클린턴 정부에 쓰던 수법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클린턴 정부와
확연하게 다르며, 지금 상황이 93~94년과는 다르다. 북한이 꺼낸
'핵무기 카드'는 '제네바 핵합의' 위반이란 근본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게 문제다. 때문에 북한이 담화 말미에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긴
했지만 이를 부시 행정부가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