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 병역 시비
맞고소·고발사건인 '병풍(兵風)'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지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있었다.
특수부를 지휘하는 정현태(鄭現太) 3차장검사가 박영관(朴榮琯)
특수1부장의 전날 발언을 사실상 뒤집는 설명을 한 것이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병무청장이던 김길부(金吉夫)씨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문제에 대해서였다.
발단은 박영관 부장이 23일 저녁 김길부 전 병무청장의 비서실장
박모씨의 진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례적으로 진술 내용 일체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박씨는 그동안 잠적해 있다가 최근 검찰에
임의동행 형식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었다. 박 부장은 "박씨가 '97년
7월 무렵 김길부씨와 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황우여(黃祐呂) 의원이
힐튼호텔에서 만났고,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병무청을 찾아왔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연씨 병역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김길부씨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것이 김대업(金大業)씨가 주장하는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와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박 부장은 이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고 김길부씨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난 사실만 공개한 것이다. 박 부장은 이날
김진환(金振煥) 서울지검장과 병풍 수사 라인 전원이 수사 발표문
정리작업 관계로 자정 무렵 귀가했지만 오후 7시쯤 먼저 퇴근했었다.
박 부장의 발언 이후 검찰 안팎에서는 박씨의 진술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이라며 25일로 예정된 수사결과 발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정현태 3차장이 나선 것이다. 그간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수사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던
정 차장은 이날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김길부씨와 박씨의 진술, 은폐 대책회의 관련 수사 내용, 97년
김길부씨가 만난 한나라당 의원 6명과 국민회의(현 민주당) 의원
2명·권영해(權寧海) 당시 안기부장·김광일(金光一) 당시 청와대
정치담당 특보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은폐대책회의냐
아니냐인데, 대책회의가 없었다는 당시 정황과 관련자들의 진술이 납득이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더 이상 수사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예정대로 25일 수사결과 발표를 한다"고 밝혔다.
부장검사의 말로 빚어진 혼선을 상급자인 차장검사가 해명하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된 것은 일부 검사들의 수사 종결 반대 등 검찰 내부 알력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부 검사들은 특히 "박영관 부장이 왜
수사 브리핑 창구역을 하고 있는 정현태 차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박씨의
진술을 공개했는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검찰 일각에서는 법무부와 검찰의 수뇌부 일부가 사전에 병풍 수사
결론을 보고하지 않고 사후 통보 형식을 취한 것을 문제삼아 김진환
지검장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