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하나, 아시아도 하나'라는 슬로건이 나부꼈던 부산에서
26일부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가 개최된다. 월드컵에 이은
부산아시안게임(아시아드)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동심원적 다층구조의 한
층위로서 아시아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부산에서
아시아드에 이어 열리는 아태(亞太)장애인경기대회가 아시아와 태평양이
맞닿는 곳에서 아시아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라는 구호로 뒤덮였던 부산아시아드를 보면서 우리는 정작
너무나 다른 남북한, 여럿일 수밖에 없는 아시아를 보았다. 가까운
이웃인 아시아와 친하게 지내자는 말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가깝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연·지리적으로만 보더라도
부산에서부터 다음 개최지인 카타르까지의 거리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거리가
대한민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막바지에 이른 칠레 사이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월드컵 당시 혈맹으로 묘사되기도 했던 터키의
깃발은 왜 아시안게임에서는 펄럭이지 않았을까? 1924년 중국의
쑨원(孫文)이 다음과 같이 연설했을 때, 터키는 분명 아시아의 일부였다.
"현재 아시아에는 두 개의 독립국만 있을 뿐인데, 하나는 동쪽의
일본이고 다른 하나는 서쪽의 터키이다. 일본과 터키는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아시아의 장벽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터키 국민의 90% 이상은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지할
정도로 터키의 유럽화는 터키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터키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것 역시 1952년 터키가 미국의 후원하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의 '미녀응원단'과 북한서포터스들의 하나됨을 위한 축제를 보면서
밀려오는 정서적 감동은 소중했지만, 연이은 북한의 핵무기 소식은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말하는 '하나의 조국'과 내가 태어나 온갖
애증을 퍼부었던 나의 조국이 너무나 다른 시간대에 놓여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더라도 그러한 열광은 나의 조국이
위치해 있는 시간대에서 볼 때 탈근대적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
자리매김되는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했다. 북한선수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살짝공(페인트)', '산들판달리기(크로스컨트리)',
'나비헤엄(접영)' 등과 같은 예쁜 우리말들을 대할 때 느꼈던 감동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질 뿐이다. 남과 북 사이의 다름은 이미 동·서독
정도의 다름이 아니라 오래 전에 서로의 길을 걸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혹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사이의 다름을 생각하게 만든다.
유럽연합의 축제가 그러했듯 진정한 하나됨의 축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아시안게임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진정한
하나됨의 축제는 아니었다. 경기에 참여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이해는
얄팍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아계 노동자들에게조차 그것은
"당신들의 축제"였을 뿐이었다. 아시아의 어린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아시아, 그것은 결코 하나됨의 언어가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아시아는 아니다. 군복을 입은 남성의 아시아도 아니며, 부르카에 싸인
여성의 아시아도 아니다. 장애인에게 하나처럼 움직일 것을 강요하는
아시아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아시아, 너무나 다른 아시아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는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으로 나아갈 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보편적 인권의 틀 안에서 아시아와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마치 터키가 범이슬람주의를 넘어 유럽연합을 지향함으로써
이슬람세계의 대안적 향도가 된 것처럼. 과거로 회귀하는 아시아, 현재를
평균적으로 조합한 아시아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아시아를
대한민국이 선도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욱
소망한다.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는 항도 부산에서 서로의 하나됨을
노래했던 아시아드의 열기가 서로의 다름을 전제로 한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 새롭게 용솟음칠 수 있기를.
(한신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