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국의 대북(對北) 적대시 정책 포기를 요구하면서 맞서고 있다.

이는 북한이 1993년과는 다른 핵 카드로 부시 미 정부를 상대로 다시 제2의 핵 협상을 벌이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핵 개발 사실이 공개된 지 나흘 만인 21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밝힌 입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평양방송도 이날 제네바 합의 8주년을 맞아 내보낸 보도에서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이 찾아야 할 교훈은 대북 강경 적대시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북한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4일 부시 대통령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의 회담에서 “제네바 합의는 무효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21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강 제1부상이나 모두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 제1부상은 이번 핵 문제를 포함 북한 핵·미사일 등 미국이 말하는 ‘안보상 우려 사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 등 북측 요구사항을 함께 ‘일괄타결’하자고 했다. 결국 북한은 추가적인 핵 카드로 미국과의 협상을 시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현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북한으로선 94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핵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경수로 원전 2기(基)는 얻었으나, 미국으로부터 관계 개선은 얻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북한은 테러지원국가 등의 리스트에서 빠져나와야 체제 안정과 서방의 경제지원을 얻을 수 있는 입장이다.

김대중 정부의 중재로 클린턴 행정부 때인 2000년 10월 ‘조·미 공동코뮤니케’에서 미·북 관계개선에 합의하기도 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북한은 새로운 핵 문제를 일으켜 부시 행정부와 제2의 핵 협상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자세는 과거 클린턴 정부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이런 추가적인 핵 개발이 8년 전 체결한 미·북 제네바 핵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면서, 협상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미 중유 공급 중단 경수로 공사 일정 조정 제네바 핵합의 파기 등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에 취할 단계적 대응조치도 분명하게 제시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제네바 핵 합의는 8년 만에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21일 공개된 북한 김영남 위원장의 발언이나 평양방송 보도도 미국이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북한이 핵 카드로 부시 행정부와 앞으로 얼마나 힘겨루기를 할지 미지수이나, 핵 개발을 중단치 않고 부시 행정부와 대화하긴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