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부르카.하늘색이나 녹색 천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리게 하는 부르카는 탈레반 정권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입어야 했던 옷이다.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은 종교경찰에게 매를 맞기까지 했다.

◆ 빼앗긴 얼굴

(라티파 지음/최은희 옮김/이레/8000원)


'빼앗긴 얼굴'은 1996년 어느 가을날, 갑자기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 버린 조국과 맞닥뜨려야 했던 아프간 소녀 라티파의
충격적인 고발 기록이다.

기자를 꿈꾸며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16세 소녀 라티파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순간에 삶을 포기해야 했다.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고 부르카를 쓰고도 남자 보호자가 없이는 집 밖에 나갈 수
없게 됐으며 길거리에서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탈레반의 채찍질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했다. 음악도 비디오도 금지된 집안은 감옥이었고
매니큐어를 했다고 손가락을 자르고 간음했다고 총살하며 잔혹한 강간이
자행되는 집 밖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이 책은 반동의 폭력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를 저자
스스로의 체험과 목격을 통해 생생히 고발하면서 독자들에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첫째는 과연 전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이미 1960년대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
1975년에는 여권을 옹호하는 법이 공포되기도 했다. 라티파의 어머니가
의사라는 사실에서도 나타나듯,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전문직에 진출해 있었고 전체 대학생의 절반 가량이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정권은 이슬람 율법이라는 샤리아법을
내세워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부정해 버렸다.

이같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대해 라티파는 탈레반이 주장하는 종교
전통이 이슬람 계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절규한다. 탈레반의
칙령에는 코란에 위배되는 부조리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같은
외침은 자연스럽게 '전통은 창안되는 것'이라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은 권력과 결합돼 있으며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의 경우만 봐도 호주제라는 '전통'은 가부장제
권력의 작동 속에서 창안됐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고 있다.

둘째는 탈레반 정권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 혹은 여성 부정에 관한
것이다. 일체의 화장과 장식을 금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철저히
억압하는 탈레반은 그것도 모자라 부르카를 뒤집어 씌우고, 어쩔 수 없이
여성을 상대할 경우 보호막까지 사이에 친다. 여성이란 존재를 아예
지워버리려 한 것이다. 이같은 혐오와 부정의 밑바닥에서 나는 여성에
대한, 더 크게는 모든 '다른 것'들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눈 먼
두려움을 읽는다.

셋째는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탈레반 정권을 궤멸시킴으로써
아프간 여성들을 비롯한 국민들이 다시 자유를 찾게 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라티파는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앞날에 대한 꿈만 그리고 있다.

전쟁 당시 아프간여성혁명연합은 '아프간 국민들의 전면적인 집단봉기에
의해 탈레반과 빈 라덴을 제거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빨리 실현시킬 수 있는 희망이었을까?

희생이 엄청나긴 했겠지만 아주 먼 꿈은 아니었을 것같다. 라티파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18살 되던 해 라티파는 이웃의 언니와 함께
동네아이들을 위한 비밀 학교를 연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그런 일을 어떻게 그 나이의 소녀가 감행할 수 있었는지, 그
용기가 놀라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부모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아프간의 억압받는 여성들과 비밀 학교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극악한 폭력의 위협 앞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아프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찾는 용감하고 현명한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이 책의 가치는 그런
여성들에게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

(김신명숙·계간 ‘이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