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는 아직 절반도 끝나지 않았다. 승부를 걸기엔 너무 빠른 듯 했다. 그 때, 태극 머리띠와 선글래스를 한 한국 선수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봉달이’ 이봉주(32·삼성전자).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스퍼트였다. 뉴질랜드와 횡계, 보령 등지서 전지 훈련을 하며 지구력과 스피드를 최고로 끌어올린 그였다. 훈련 시간을 경기가 열리는 낮 시간대에 맞춰 더위에도 대비한 이 한국 마라톤의 스타는 해운대의 바랏바람을 가르며 2위와의 거리를 벌려나갔다. 출발 총성이 울린 뒤 한 시간 남짓만의 일이었다.
20㎞까지는 예상대로 한국과 일본의 싸움이었다. 태극기와 일장기 두 개씩이 엉켜 달렸다. 한국의 이봉주와 임진수(23·코오롱), 일본의 다케이 류지(31)와 시미즈 코지(33)는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했다. 선두로 나섰다가 뒤로 물러서기를 되풀이하며 신경전을 펼쳤다. 기록보다는 월게관의 영예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출발 시각인 오후3시 이후 부산의 기온은 섭씨 25도를 오르내리는 초여름 날씨라 무리하다간 제풀에 지치기 십상이었다. 선수들은 주로에 마련된 음료대로 자주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봉주가 팽팽한 긴장감을 깨면서 추격자들은 맥이 풀렸다. 일본의 희망 다케이도 그 중 하나였다. 다케이는 올해 초 비와코 마라톤에서 개인 최고이자 이번 시즌 아시아 최고기록(2시간8분35초)을 세우며 우승한 선수. 하지만 아시안게임 2연속 월계관을 향해 달려 온 이봉주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25㎞를 지나면서는 작년 후쿠오카 마라톤 2위였던 노장 시미즈에게 밀렸다.
일본 선수들이 2,3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이봉주는 독주를 거듭했다. 전날 여자부 챔피언에 올랐던 북한 함봉실(28)의 레이스와 똑같았다. 골인. 시계는 2시간 ○분○초를 표시했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지난 4월 김미순(32)씨와 결혼한 뒤 신혼의 단꿈까지 포기한 이봉주로선 내조에 힘써 온 아내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을 안겼다. 내년 3월에 태어날 2세에게도 자랑스런 금메달을 쥐어 줄 수 있게 됐다.
/부산=성진혁기자 jhsung@chosun.com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