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미 카터(Jimmy Carter·78) 전(前) 미국 대통령(39대)은 1981년 퇴임 후 전세계 분쟁 지역을 찾아가 갈등 해소에 노력했다. 이로 인해 ‘재임 중 가장 인기없던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이란 평가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직 대통령’ ‘거듭난 정치가(statesman)’로 바뀌었다.

카터는 해군 장교로 시작해 농장 주인으로 성공했고,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오른 뒤 ‘인권’을 미국 외교의 근본정책으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이번에 노벨상 위원회측이 주목한 것은 퇴임 후의 공적이다. 카터는 퇴임 후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세운 ‘카터 센터’를 중심으로 전세계의 인권신장과 민주정치 정착에 활발히 개입하는 등 더 많은 위업을 쌓고 있다.

◆ 퇴임 후 ‘아름다운’ 행적

대부분 미국 전직 대통령들은 골프장에서 소일하거나 돈벌이 강연에 나서곤 한다. 그러나 56세에 대통령에서 물러난 카터는 부인 로잘린(Rosalynn) 여사와 함께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비영리 재단 ‘카터 센터’를 세웠다. 전세계를 돌며 민주정치 정착과 평화 중재, 빈곤과 질병 퇴치에 힘을 쏟았다. 작년 5월에는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Castro)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인권문제 개선과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당시 카터는 TV에 출연, 스페인어로 쿠바 국민에게 인권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카터는 멕시코·페루·니카라과·베네수엘라·동티모르 등의 선거에서 민간 선거감시단을 이끌며, 이들 지역 국민들이 자유롭게 대표를 뽑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가 설립한 카터 센터는 아프리카에 뛰어난 농업개혁 프로그램과 의료 지원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 한국과의 관계

카터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거부하고 탈퇴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최악으로 치닫던 1994년 6월 15~18일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 주석과 만나 ‘최악의 사태’ 방지를 설득했고, 긴장 해소를 위해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다는 김일성의 말을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에게 전했다. 그러나 7월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담은 무산됐었다. 카터는 작년 8월에도 방한해 유엔의 ‘사랑의 집짓기’운동에 참가해 직접 집 건축공사에 나서는 등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 대통령으로선 최저 인기

카터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가 최악이던 1977년 ‘나를 믿어달라(Trust me)”라는 구호로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워싱턴 정계는 그를 조지아주 땅콩 농장주 출신의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재임기간은 오일 쇼크에서 비롯된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로 얼룩졌고, ‘도덕’과 ‘인권’에 기초한 그의 외교정책은 현실 국제정치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성공으로 미국인 66명이 인질로 잡혔고, 이듬해 구출 작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1979년에는 또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카터는 결국 1932년 이래 첫번째 4년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실패한 첫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후 ‘평화의 전도사’로서 펼친 행적으로, 카터는 현직 때보다 훨씬 많은 칭송과 주목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계속 노벨 평화상의 ‘단골 후보’로 올랐고, 지난 1998년 12월에는 ‘세계 인권 선언’ 발표 50주년을 맞아 유엔이 제정한 유엔 인권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