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상한 바람이 귓전에 말 건네는 초가을, 허전해진 가슴 한 켠을
감동으로 채워줄 만한 미국산 휴먼 드라마 한 편이 극장가를 찾아온다.
18일 개봉되는 제시 넬슨 감독의 '아이엠 샘'(I am Sam)이다.
어느 아버지와 어린 딸의 기구한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란게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하는 이 영화롤 20분쯤 보고 있으면 눈자위가 촉촉해지기
시작한다. 닳고닳은 테마지만 새로운 느낌의 스토리를 유머와 눈물을
섞어가며 풀어냈고, 숀 펜의 빼어난 연기가 있으며, 아직도 빛나는
비틀스 음악의 광휘(光輝)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설정='아이엠 샘'의 주인공은 7살 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철부지 어른' 샘 도슨'(숀 펜)과, 샘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7살짜리
'동갑내기'(?) 딸 루시 다이어몬드 도슨 부녀다. 젖먹이 때부터 샘은
도망간 엄마 대신 딸을 키웠다. 그런데 7살이 된 루시는 자기 지능이
아빠를 뛰어넘는다는 걸 받아들일수 없어 스스로 공부를 '거부'한다.
이를 알아챈 사회 복지 기관은 샘의 양육권을 박탈해, 루시를 양부모에게
입양시킨다. 그것도 루시의 일곱번째 생일에.
딸을 되찾으려는 샘이 여 변호사 리타(미셸 파이퍼)에게 도움을 청해
법정이 열린다. '지능'이 아버지의 조건이라 주장하는 측과, 샘 같은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일수 있는가를 믿는 측이 맞서는 가운데,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딸 사이에 가슴 뭉클한 일들이 시작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숀펜의 열연 = 상처받은 영혼의 얼굴이 호소력을
갖는건 많은 이들이 실은 조금씩 상처받고 살기 때문이다. 샘은 사람들이
체면이나 자제심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있던 맑은 심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매력적이다. 그는 8년째 일하는 커피숍에서 능력이 안돼 테이블
닦기와 설탕 봉지 정리만 하지만, 아침에 계란을 깰 때마다 '미안하다,
계란아…'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2×2' 는 못하지만,
비틀즈에 관해선 박사이고 매니아다. 존 레논과 그의 아들 생일이
10월9일로 같다는 것도 알아 아파트도 9호를 얻는다. 딸 이름도 비틀즈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땄고, 딸에게 쓴 편지는
'P.S. I love you' (비틀즈 노래 제목)로 맺는다. 설탕 봉지를
정리할땐 꼭 같은 종류끼리 한데 모으는 '정돈벽'(整頓癖)이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모든 선(線)을 밟지 않으려했던 잭
니컬슨과 통하는 강박증이다.
초첨없는 눈으로 결손 투성이 인간의 어눌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숀 펜은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도 질투할만한
명연기"(뉴욕 포스트 지)로 관객을 울린다. ▨전편을 수놓는 비틀즈=
샘이 비틀즈를 숭배하듯 이 영화도 거의 비틀즈에게 바치는 오마
주(경의)다. 샘이 딴 집에 입양된 딸을 보러 갔다가 그런대로 잘 사는듯
해보여 쓸쓸히 발길 돌릴 때,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가
입혀지고, 샘과 루시가 한밤 공원에서 즐거울 때면 'Strawberry Fields
Forever'가 흐른다. 이런 비틀즈 노래들은 단순한 삽입곡을 넘어서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영화속 사랑의 분위기를 비틀즈의
열정으로 따뜻하게 수놓는다. 주변 세계로부터 늘 영향받는 샘의 시점을
흉내내 줌 인을 자주 구사하며 종종 흔들리는 카메라도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아이엠 샘'은 영화가 물량와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