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무슨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봐요.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보는 것이죠….』 마릴린 먼로는 가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계의 남정네들은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휘날리는 치마를 누르며 교태를 짓는 그녀에게 열광하고
밤잠을 못 이뤘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세기(世紀)의 「섹스
심벌」이었으므로….
먼로와 같은 하얀 피부와 파란 눈, 그리고 눈부신 금발은 오랫동안
서양에서 미녀의 표준으로 인식돼왔다. 먼로도 그 때문에 원래
갈색이었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 먼로에서 시작된 할리우드
금발 미녀의 계보는 골디 혼, 킴 베이싱어를 거쳐 캐머런 디아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구촌이 하나가 되면서 금발 미녀에 대한
선호는 동양에까지 파급됐다. 요즘은 한국 어린이 동화책에서마저
미녀는 으레 금발에 파란 눈의 아가씨로 묘사된다.
그런데 영국 BBC방송은 이런 금발 미녀를 볼 날도 앞으로 20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독일 연구진의 예측을 보도했다.
유전학적으로 장차 금발은 줄면 줄었지 늘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발색의 유전형질은 흑색이 갈색보다 우성(優性)이고, 갈색이
금색보다 우성이어서, 금발이 유전되기 위해서는 부모 양쪽
가계(家系)가 모두 금발이 아니면 안 된다. 신체의 유전현상은 모발색
외에 곱슬머리가 직모보다, 작은 키가 큰 키보다, 검은 피부가 흰색
피부보다 우성인 데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금발이 사라지는 것을 꼭 아쉬워만 할 필요가 있을까? 고대
로마에서는 매춘을 합법화하면서 매춘부들을 일반 시민과 구별하기
위해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게 하거나 금색 가발을 쓰게 했다. 보들레르
같은 시인은 『영원히 오래 끊이지 않고 헝클어진 흑발 갈기갈기에 내
뿌려주리라, 홍옥과 진주와 벽옥(碧玉)을. 흑발, 너는 내 꿈꾸는
사막의 녹지, 그리고 추억의 미주(美酒)…』라며 검은 머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색소가 옅은 금발 머리는 햇볕에 노출됐을 때 더 빨리
약해지고 피부도 빨리 손상시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李濟馬)는 일찍이 『사람의 머리란 울창한 숲과
같아서, 숲이 무성하면 산사태를 방지하고 땅이 기름지듯 건강과
수명이 길어진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머리의 색깔이 아니라 양과
질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동양인의 검은 머리가 유전면에서도
우세하고 건강에도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