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서민복지 향상에 노력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출범과 동시에 벌어진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그 방향만큼은 옳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내용이 때로는 지나치게
의욕적이어서 우리 경제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뒤따르는 경우가 과반(過半)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전세 값과 집 값이 이렇게 올랐는데…. 특히 지난 4년간
전세가격 상승폭은 부동산 버블이 정점에 달하여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었던 1988~1991년의 증가폭에 육박하고 있다. 연금, 보조금, 세제
및 금융지원이 아무리 신설·확대되었다 해도 서민생활에 가장 기초적인
주거 문제는 오히려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서민복지 향상을 표방한
그동안의 정책들이 부동산 버블 앞에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많고도 많은 집과 아파트 중에 우리 가족이 살 곳은 어디란 말인가?"
서민·중산층과 20~30대 젊은 층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자임해온 '국민의
정부'는 이들의 절망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대로라면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생의 원동력이 결국에는 주식 버블, 코스닥 버블, 그리고
부동산 버블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혹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비단 무주택 서민·중산층이나 20~30대 계층의 처지가 딱해 보여서만도
아니다. 지금 정도의 버블이라면 당장 내년부터 생계보장 차원의
임금상승 요구를 표면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봉급으로는 내 집
마련, 전세금 마련의 문턱이 하도 까마득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좀 더
많이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임금상승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고금리를 초래할 뿐 아니라, 상업용 건물이나
토지로까지 버블이 번진다면, 고임대료, 고물류비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너무나 익히 보아온 1990년대 고비용 구조의 악순환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금의 부동산 버블은 향후 우리경제 운영에 있어서 공적자금
못지않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여러 가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을 의문시하는
시각이 많다. 근본적 원인, 즉 초저금리(初低金利)를 바로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이건 어느 시기이건 부동산 버블의 배경에 과잉
유동성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1988~1991년의 버블도 알고
보면 1986~1988년 삼저(三低)호황 당시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에서 비롯된
과잉 유동성에 원인이 있었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최근의 버블도 내수부양을 위해 2001년부터 시작한 초저금리 기조를
적기에 환원하지 못하였던 데에 기인한다. 금년 초부터 금리인상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음에도 여태껏 사상최저의 금리를 유지해온
것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버블의
원인치유보다 성장률 유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얘기이다. 버블의
심각성을 목도함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유지를 위해 금리인상을
주저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정부'가 성장제일주의의 구습을 타파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성장제일주의야말로
'개발연대'의 핵심적 패러다임이다. 경제위기 이후 온 국민이 참고
견뎌온 고생도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을 버리기 위한 수업료였지 않았는가.
성장제일주의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지 않는 한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박종규/금융연구원 연구위원)